현실 화강암 관대서 발견
부여문화재연구소 보관돼
학제간 연구수행-정보확인
판축기법 봉문 조성 '규명'

지난해 8월 일제강점기 조사 이후 100년만에 발굴조사가 재개된 백제고분인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나와 문화계에 이목이 쏠렸다.
지난해 8월 일제강점기 조사 이후 100년만에 발굴조사가 재개된 백제고분인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나와 문화계에 이목이 쏠렸다.

지난해 8월 일제강점기 조사 이후 100년 만에 발굴조사가 재개된 백제 고분인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나와 문화계에 이목이 쏠렸다.

익산 쌍릉은 향가 ‘서동요’에 등장하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선화공주가 묻혔다고 전하는 이 무덤은, 대왕릉과 이보다 작은 소왕릉이 나란히 조성돼 있는 곳이다.

2일 전북도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쌍릉 대왕릉에서 현실(玄室·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방, 무덤방)의 가운데에 있는 화강암 관대 위쪽에서 인골이 있는 상자를 찾아냈다.

이는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상자는 가로·세로 각 26㎝이며, 높이는 33㎝로, 안에 인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인골은 1917년 쌍릉을 발굴한 일본 ‘야쓰이 세이치(谷井濟一)’가 관과 토기, 장신구, 치아 등을 수습한 뒤 무덤 주인공의 인골을 모아 다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무덤 주인공의 인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인골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항온항습실에 보관돼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단은 봉분 직경이 약 25m, 높이가 5m인 대왕릉의 내부 구조와 규모도 확인했다.

구조는 백제 사비도읍기의 전형적인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으로, 입구가 중앙에 있고 현실은 육각형으로 나타났다.

현실 크기는 길이 378㎝, 너비 176㎝, 높이 225㎝로 나타났다.

이는 1979년 일본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제시한 실측도와 거의 비슷한 수치로, 백제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현실이 가장 큰 무덤인 동하총보다 넓은 것이다.

무덤으로 통하는 길인 연도는 길이 67㎝, 너비 125㎝, 높이 156㎝로 조사됐다.

관대는 길이 268㎝, 너비 82㎝, 높이 24㎝로, 관에서 떨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금박이 일부 남아 있었다.

조사에서는 현실 조성 과정에서 대형 화강암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하고, 사비도읍기 백제 왕릉급 무덤 중에는 처음으로 흙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판축 기법으로 봉분을 만들었다는 점도 규명됐다.

전북도는 대왕릉의 규모나 구조 면에서 왕릉급 무덤이 확실하다고 보고, 무덤 주변에 제사 행위 흔적 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변을 더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소왕릉 발굴조사 시점은 이르면 올해 후반기에 추진할 예정이다.

익산 쌍릉의 대왕릉과 소왕릉은 각각 부여에서 익산으로의 천도를 추진한 무왕과 그의 부인인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리봉안기에 무왕의 부인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고, 대왕릉에서 발견된 치아를 분석한 결과 20∼40세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피장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쌍릉은 야쓰이 세이치의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된 상태였으며, 관을 비롯한 출토 유물 일부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익산=문성용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