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의 옴팡밭에서 벌어진 학살
제주 4.3사건의 비극 담담한 문체로 담아

“한날 한시에 이 집 저 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 집 저 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성 소리, 5백 위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 삼촌’은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던 제주 4·3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낸 작품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직접 겪은 현기영은 4·3사건은 의무감, 부채감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제사를 맞아 고향인 제주에 내려간 화자 ‘나’는 소설 제목이자 친척 아주머니 ‘순이 삼촌’을 통해 독자들을 향리에서 벌어진 그날의 양민 학살 현장으로 데려간다.

그 날 학살이 벌어지던 아비규환의 옴팡밭에 순이 삼촌도 끌려갔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공교롭게도 그 학살터가 되어버린 옴팡밭은 순이 삼촌네 소유였다.

흉년이 들어 다른 사람들은 끼니 걱정을 해야 했지만 옴팡밭의 고구마들은 죽은 시신을 먹고 큼직큼직했다.

순이 삼촌이 그 옴팡밭에서 김을 맬 때면 뼛조각이나 납탄환이 끊임없이 걸려 올라왔다.

순이 삼촌은 총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렸다.

그 날 이후 마을 주민들은 서서히 고통을 잊고 살 수 있었지만 순이 삼촌만은 그 옴팡밭에서 단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신경쇠약과 환청으로 고통 받던 순이 삼촌은 결국 자신을 평생 옥죄던 그 옴팡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간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

작가는 순이 삼촌의 삶의 되짚어 가며 30년 동안 은폐된 제주 수난의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 복원한다.

탄탄한 구성과 서정적인 묘사, 담담하지만 중후한 문체가 어우러져 그 날의 비극을 더한다.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깊이 있게 다루어 온 작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이 만들어낸 아픈 역사를 피하지 않고 비극의 진실을 마주할 것을 주문한다.

“아니우다. 이대로 그냥 놔두민 이 사건은 영영 매장되고 말 거우다. 앞으로 일이십년만 더 있어봅서. 그땐 심판받을 당사자도 죽고 없고, 아버님이나 당숙님같이 증언할 분도 돌아가시고 나민 다 허사가 아니우꽈? 마을 전설로는 남을지 몰라도.”

총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현기영 소설집 <순이 삼촌>은 표제작 ‘순이 삼촌’ 외에도 그 날의 처절한 현장을 역사적 현재의 수법으로 절실하게 재현한 ‘도령마루의 까마귀’, 4·3사건의 비극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적 사건으로 부각시킨 ‘해룡이야기’ 등의 초기 3부작도 함께 실려 있다.

폭도에 가담한 아버지를 둔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한 등단작 ‘아버지’ 역시 4·3사건과 맞닿아 있다.

오랫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제주 4·3사건을 최초로 다룬 현기영은 그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보안사에 끌려가 사상을 검증해야 했고 혹독한 고문을 겪어야만 했으며 책은 발매 금지 처분을 당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4·3사건은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가 되었지만 비극적 사건의 시발점인 이념 대립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제 아픈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보듬어 치유와 회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이것이 우리가 4·3사건을 잊지 않고 ‘순이 삼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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