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규 '파도치는 땅'
국가폭력-개인 상처 표현

장우진 '겨울 밤에'
시간의 교차와 미스터리

이학준 '굿 비즈니스'
탈북인권운동 재조명

전주와 더불어 성장해나갈 감독들을 찾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는 영화제 이름을 알리는 것은 물론, 영화미학의 발전을 위해 운영중이다.

지난해 3편의 영화에 대해 제작지원을 해오던 영화제가 올해부터는 대상 작품을 5편으로 늘렸다.

그 중 한국영화 ‘파도치는 땅’, ‘겨울밤에’, ‘굿비즈니스’ 는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영화제의 도전적인 노선을 고수하며 연출가의 색깔을 엿 볼 수 있는 한국영화다.


△ 국가폭력 이후 남겨진 삶… 임태규 ‘파도치는 땅’

영화 ‘파도치는 땅’은 납북어부였던 아버지가 간첩죄로 복역하는 동안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던 중년의 남자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겪는 갈등과 회한, 다음 세대와의 좁혀지지 않는 부자간의 거리를 그려낸다.

‘세월호사건’과 ‘납북어부 간첩사건’ 두 개의 국가폭력으로 인해 개인에게 남겨진 상처가 어느 세대까지 대물림 되고 있는지 보여주며 아픈 과거를 반복한다.

지난 5일 열린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임태규 감독은 “납북어부 재심관련 기사를 읽은 후 영화 기획을 하게 됐다.

신문 지면에 실린 피해자의 울 것 같은 표정 속에서 문득 ‘저 사람의 자식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고 그게 영화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영화 안에는 두 가지 국가폭력이 존재한다.

세월호와 납북어부 간첩사건이다.

두 개의 사건을 맥락상 연결시키는 일이 힘든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파도 치는 땅’은 상처 입은 개인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롱테이크 기법으로 묵직하게 끌고 가며 3부자의 쓰디쓴 여정을 목도하게 된다.


△ 시간의 미스터리함… 장우진 ‘겨울밤에’

시간의 미학이 잘 드러난 영화 ‘겨울밤에’는 신기하다.

2018년과 1988년의 시간이 절묘하게 교차되면서 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두 갈래의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마음대로 갖고 놀면서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데, 공간에서 지긋하게 뽑아내는 화면의 밀도는 다채롭다.

영화는 30년 만에 춘천 청평사를 찾은 중년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해 20대 군인과 남자를 면회 온 여자가 같은 공간을 흘러 다니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여 진다.

현재와 과거가 부유하듯 떠다니며 주인공 ‘은주’와 ‘흥주’의 기억 속 남겨진 기억과 권태로운 부부의 모습이 혼재되며 혼란을 준다.

영화는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기로 작정한 듯 다양한 영화적 시도가 돋보이며 신선하게 다가온다.

장우진 감독은 “이야기의 시작점은 ‘십우도’다.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데 비유한 10단계 그림으로 영화에서는 4가지의 이미지만 차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흔적들이 뿌려지는데 영화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고 싶었다”며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 탈북인권운동의 이면…이학준 ‘굿비즈니스’

탈북인권운동의 이면을 다룬 ‘굿비즈니스’는 제목처럼 인권운동을 비즈니스적으로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를 주인공으로 고아가 된 두 자매를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그 과정 중 돈과 불신이 오가는 이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치, 인권, 인물의 명암, 종교 등 복합적 주제들이 담겨 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큰 사건은 ‘돈’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진실을 다양한 인물의 군상을 담아내며 여러 논쟁거리를 던진다.

이학준 감독은 “김성은 목사와의 인연은 13년쯤 됐다.

7년 전에 탈북인권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국민들은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며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는 ‘돈’에 얽힌 인물의 이기심과 욕심, 배신과 음모의 과정을 박진감 있게 펼쳐 보이며 주인공 김성은 목사 말고도 세 명의 브로커를 등장시킨다.

부와 명예를 위해 탈북인권에 뛰어든 브로커, 역량은 부족한데 돈은 벌고 싶은 브로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브로커까지 그들을 통해 ‘인권운동’으로 포장된 선의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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