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공간 아우르는 시적 개념 '사이'
색감-무늬쌓여 반복된 첩어 감정 극대화

오창렬 시인의 시집 ‘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모악)’가 출간됐다.

시집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시가 우리의 ‘눈 속에서’ 피어나는 동안 천일의 밤이 하룻밤처럼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펼치면 천일의 시간이지만 접어놓으면 딱 하룻밤 이야기 같은 인연들이 이 시집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집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사이’라는 지점이다.

시인에게 ‘사이’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시적 개념으로 이를 표제어로 하여 이곳과 저곳이 아닌 어름의 지점에서 다양한 의미를 포착해낸다.

나의 이야기이면서 너의 이야기를 말하는가 하면, 내 이야기도 네 이야기도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한다.

또 ‘사이’는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점으로 사용되어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몸과 의식 사이에서, 생활인과 시인 사이에서 시로써 발화된다.

“사랑은 만남과 이별 사이의 일이라지요//우리 만났던 봄날 이후 당신을 이별하지 않았으니 나는 사랑 안에 있고 나를 만나러 오지도 이별하지도 않는 당신 또한 그러하니 당신은 늘 거기 계세요//사랑 가운데라면 지극함만으로도 꽃은 피어 마음 복판에는 안개꽃처럼 간절간절 망초꽃 피고 그 뒤로 조금은 슬픈 빛으로 쑥부쟁이가 피어나느니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이따금 폭설 내리기도 하느니//눈 녹은 하늘에는 백목련도 첫사랑처럼 둥둥 피어 오른다지요” (‘망초와 쑥부쟁이와 폭설’ 전문)이 시에서 주목할 대목은 “마음 복판에는 안개꽃처럼 간절간절 망초꽃 피고”라는 구절이다.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된 첩어는 간절함이라는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주체와 주체 사이에 흐르는 간절함이 ‘간절간절’로 표현되며 쌍방의 소통이라는 숨은 뜻을 강조하는 셈이다.

오 시인의 시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시가 지닌 품이 짙다는 것이다.

다층적이면서도 밀도와 농도를 함께 갖추고 있는 표현들로 독자들은 시를 읽으며 여러 겹의 무늬가 겹쳐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색채의 파노라마를 경험하게 된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시의 무늬와 시의 색감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알 수 있다.

“가지에 앉은 새보다 허공을 헤매는 새가 더 새답거니/호흡 거친 선, 꿈틀꿈틀 피가 돌아 뜨거운 선이 되거니//뜨거울수록 가까워지는 너와 나 사이의 거리”(‘지름길’ 부분) “단풍나무 그늘을 부산하게 건너가는 무당벌레/그 혼비백산에도 검은 반점 하나 떨구지 않는 걸 보고/말없는 말이 말의 윗길이듯/자국 없는 자국이 자국의 윗길이라는 걸 배웠어요”(‘윗길’ 부분) 두 시 모두 시인의 관찰력과 상상력을 엿 볼 수 있다.

‘지름길’에서는 단순히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허공을 헤매는 새를 발견하고 묘사했다.

새의 새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문득 생각할 지점을 만든 것이다.

또 ‘윗길’에서는 ‘말없는 말이 말의 윗길’이고 ‘자국 없는 자국이 자국의 윗길’이라는 말장난 같은 이 구절 또한 ‘말’과 ‘자국’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시를 통해 새로 발견된 지점과 이미 알고 있던 지점 ‘사이’를 끌어안는 아량을 통해 시의 품이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농밀하게 입체적인 ‘사이’의 구조를 오창렬시의품격이라고할수있다.

박성우 시인은 “시인의격과결을그대로닮은고요하고고결한시편들이다.

잘 여문 시의 씨앗에서 꽃냄새와 샘물냄새와 사람냄새가 난다”며 “꽃이 오는 줄도 꽃이 가는 줄도 모른 채 살아온 걸음을 멈추고 시와 사람의 깊이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살고 있는 오창렬 시인은1999년 계간시지 ‘시안’ 신인상에 ‘하섬에서’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 진흥 기금 지원 사업공모 개인 창작 분야에 선정됐다.

제8회 짚신문학상 수상 및 2009년 개정교육과정, 2015년 개정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등에 시 ‘부부’ ,‘가을밤’이 수록됐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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