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전주 시내버스기사가 써낸 자기성찰
극한상황 속에도 해학-유머, 진심 표현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 친절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버스라는 세상을 책임지는 전주의 버스기사 허혁씨가 전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를 보여준다.  

현직 버스기사인 저자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상과 사람, 자기에 대한 성찰을 글로 풀어냈다. 노동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힘 있는 언어들이 책 안을 유영하며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담담하게 적어냈다.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운전하는 동안 가장 착한 기사였다가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기사가 되기도 한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운전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이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글로 적었고, 한편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모멸과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는 해학과 유머의 순간들이 내밀한 이야기로 변주되었다. 지나치게 익숙하지만 또 너무나 특별한 저자의 이야기는  타인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 성찰의 언어들로 진심을 표현한다. 

“박물관 가요?” 

안 간다니까 몇 번 타야 되느냐고 또 묻는다. 거기 가는 버스가 한두 대도 아니고 뒤에 버스가 줄줄이 서서 내 차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현실은 가요, 안 가요 수준의 단답형 대답만 가능하다. 느닷없는 질문에 퍼뜩 생각도 안 나고 모드 전환을 해서 떠오르는 대로 답을 한다 해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684, 49, 9, 62, 554, 559, 31, 644, 685….’ 대충 아무 번호나 하나 불러주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다른 버스도 많은데 기사가 알려준 버스 하나만을 기다리며 애를 태워야 한다. 정류장에 다른 승객도 많은데 꼭 정신없는 기사한테 물어봐야 하나? 기사가 속 깊은 계산으로 잘 모른다며 손을 저으니까 대뜸 욕이 날아온다. 딱 보니 울화병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당신의 상처 때문에 며칠 밤낮을 반성과 성찰로 보내기는 싫다. 시원하게 한판 어우러지고 싶은 충동을 뒤로하고 간신히 정류장을 벗어났다. 언제나 일장일단은 있다. 욕을 먹으니 힘이 불끈 났다. 머리가 찌릿찌릿 하니 몸이 확 살아났다. 버스도 열을 받았던지 덩달아 힘을 냈다. (‘분노는 나의 힘’ 중에서)

왜 버스가 늦게 오는지, 왜 기사는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해주는지, 왜 선글라스까지 쓰고 인상을 팍팍 쓰고 있는지, 왜 버스정류장 박스에 딱 맞춰 서지 않는지, 왜 급히 좌회전을 해서 몸을 쏠리게 만드는지, 왜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왜 모두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지, 버스기사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통해 버스를 탈 때 가졌던 불만과 짜증이 납득과 이해로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1부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시작으로 2부 ‘당신과 나 사이에, 버스’, 3부 ‘버스 사용 설명서’, 4부 ‘버스에 오르면 흔들리는 재미에 하루를 산다’ 등으로 구성됐다. 누구나 마음 속 에 하나씩 두고 있는 삶의 애잔함과 서글픔을 세상이라는 노선도에 빗대 보여주며 공감과 위로의 힘을, 삶에 대한 포근한 희망과 개운해지는 눈물을 전한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와 삶의 고닫함을 내려놓는 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은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