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言語)는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게 하는 가늠자가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성품, 인품, 지식, 사상 나아가 직업과 능력 등을 알게 되고 그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됨됨이는 상대방의 인격을 가늠하게 만든다.

“인격이란 사람으로서 가지는 품격으로 개인의 지적(知的)·정적(情的)·의지적 및 신체적 측면을 총괄하는 전체적 통일체로서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 결정적이고 자율적 의지를 가지며, 그 자신이 목적이 되는 개인을 말한다.”(한컴사전)

각 개인의 인격을 말하는 품위는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사람으로서의 합당한 도리와 품위를 가질 때 인격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격적 대우를 받기 위해 스스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특히 언어는 사람의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으로서 그 사람이 인격의 척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이 24일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 1-2로 패하자 태클 수비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준 선수에 대한 악의적 댓글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난무했다.

비난을 넘어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통해 인격을 모독하는 등의 수준의 댓글로 선수들이 본다면 축구를 그만두고 싶은 만큼의 모욕을 느낄 만한 글들이 난무했다.

심지어 일부 누리꾼은 월드컵에 출전중인 한국대표선수 가족의 외모까지 비하하기까지 하는 도에 지나친 비난을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SNS 계정을 폐쇄하기도 했다.

응원은 운동 경기 선수들이 힘을 내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응원하는 것은 경기하는 선수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선수기 때문에 대표선수들의 경기 결과를 통해 얼마간은 대리만족을 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 크게 만족할 수도 있고 불만족으로 인해 실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경기를 하는 선수 역시 자신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할 국민들을 의식하고 그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게 된다.

또한 경기의 결과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명예 역시 선수로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의 역량을 다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운동경기가 선수들의 실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날의 행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로 인해서 역대 월드컵 경기뿐만 아니라 많은 운동경기가 예상을 넘는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은 강호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16강에 올랐던 것도 큰 이변으로 말하고 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이변은 이어졌다.

우승 후보국인 독일과 브라질의 예상을 빗나간 경기결과와 아르헨티나의 부진, 일본의 선전 역시 이변이라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메시의 페널티킥 실축은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통해서도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2002월드컵의 신화는 히딩크라는 명장의 감독도 있었지만 국민적인 열광적 응원에 힘입은 선수들의 그라운드에서의 열정적 경기가 이루어낸 결과이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한민국 국민들의 길거리 응원은 단지 국내뿐만 아니라 교포들이 있는 곳이라면 모든 곳에서도 뜨겁게 선수들을 응원했고 그 응원은 선수들에게 경기를 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국민들은 모두가 한결같은 응원자가 되어야 한다.

경기 결과에만 연연하여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들을 그것도 선수 가족까지 비난하고 악플을 통해 고통을 준다면 다음 경기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응원을 하는 응원가가 되어야지 경기를 분석하여 비평하는 비평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목회자로서 설교를 하는 사람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 내용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설교에 대한 비평가가 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전혀 발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경기를 보고 응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작은 성의를 통해 응원함으로 선수들에게 간접적으로 용기와 격려를 주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응원의 의미이다.

그것이 성숙한 인격자로서의 모습이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얼마간의 시행착오나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능력이어서 서로 이해하고 포용할 때 더욱 용기를 가지고 분발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도 역시 그러한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상대방의 부족함도 동일하게 여겨야 한다.

이 시대는 SNS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開陳)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인격을 헤치는 일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언어는 자신의 인격을 보여주는 척도임을 생각하고 신중한 언어의 선택을 통해 주변에 아픔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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