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부터 3대 가업이어
전주서 가장 오래된 악기사
적자가 흑자로 전환 되기도해
ICT-문화 결합 회사 창립등

“경영 철학이라고 하면 ‘거짓말 하지 말자’다. 어머님께서 어릴 적부터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그 기조를 바탕으로 손님들에게 어떤 것도 허투루 말하지 않고, 약속도 꼭 지키려고 한다. 그래야 손님이 믿고 온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남문음악악기사’가 85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비결이다.

전주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악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남부시장 인근에서 축음기 수리가게를 개업하여 1962년도에 현재의 자리(풍남문3길 27-13)에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이장현, 이장선씨 형제까지 3대가 운영하며 전주악기사의 명맥을 지켜나가고 있는 곳이다.

남부시장에서 풍남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남문악기사’라는 간판을 달게 되었고, 90년대 음반시장이 부흥하면서 음반판매와 함께 ‘남문음악악기사’로 이름을 바꿨다.

대중들이 음악을 듣는 방법에 따라 악기사도 변해왔다.

테이프가 한창 유행할 때에는 전시 할 틈도 없이 박스째 진열해두고 판매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주 수입원이었던 테이프의 인기가 지나자 악기 붐이 일었다.

그리고 다시 CD를 기반으로 한 음반 소비가 많았던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음반이 아닌 악기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사회가 디지털화 되면서 악기사도 시대에 따라 변해온 셈이다.

“요즘은 테이프나 CD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대신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도 하면서 악기가 많이 팔리고 있다. 전에는 악기를 산다고 하면 밴드 하는 분들 몇몇만 사곤 했었다. 요즘은 실버세대에서도 취미활동으로 악기 연주를 하면서 다양하게 악기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8년 정도 악기가 팔리지 않아 부침을 겪었던 시기도 있었다.

또 가격경쟁을 벌이는 가게들로 인해 악기사 고유의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여전히 악기사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장현씨는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고 명쾌하게 답한다.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왔지만 그가 그리는 남문음악악기사의 미래는 확고해보였다.

“적자가 나더라도 기회가 생기면 충분히 흑자가 되기도 한다. 돈 보다는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악기사가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ICT와 문화를 결합한 회사도 2층에 만들 계획이고, 100주년 기념행사도 추진해 악기사의 역사를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이 공간이 꾸준히 유지돼야 한다. 아이들 중 누군가는 이 공간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씨에게 남문악기사는 오랜 시간동안 전주 시민들과 함께 해 온 추억의 산물이기에 계속해서 지켜야 할 공간인 것이다.

근·현대 대중음악 소비 역사의 산증인이자, 시민들의 공통의 추억과 감성이 공존하는 ‘남문음악악기사’.

역사적 가치 외에도 대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른 만큼 전주를 대표하는 100년 가게가 되길 기대해본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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