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번지는 '탈 코르셋'

#상 - 여성다움의 억압을 벗다

타인에 의한 女주체성 왜곡-억압
벗어나 인식적 변화-확산 시도해
현대사회 가부장적 프레임 탈피

소셜미디어(SNS) 운동 활발하고
여성 상품화 사회상에 도전-저항
자신의 권리-자유로움 추구해

여성을 옭아매고 있던 미의 기준이 변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억지로 외모를 치장하지 않고, 여성의 주체성을 되찾자는 의미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여성을 억압했던 코르셋을 벗어 던지는 문화 현상으로 확산됐다.

화장, 몸매를 보정해주는 속옷, 제모, 긴 머리 등을 거부하며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자는 ‘탈(脫) 코르셋’ 운동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코르셋은 체형을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가슴에서 엉덩이 위까지 꽉 조여주기 위해 철사를 넣어 만든 옷을 말한다.

현대에 와서는 코르셋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을 뜻하게 됐다.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성다움에 대한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바로 탈 코르셋 운동이다.

긴 생머리에 치마, 44사이즈, 잘 정돈된 피부와 붉은 입술 등이 여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꾸미는 행위에 몰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라인상에서는 부러뜨린 립스틱, 깨부순 화장품 파편, 잘라낸 머리카락 등을 촬영해 올리며 더 이상 화장으로 치장하는 꾸밈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탈 코르셋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여성들은 사회에서 여성다움으로 강요 받았던 미적 기준이 아닌 ‘나’ 다운 삶을 지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 애틀랜틱시티에서 미스 아메리카 대회가 열렸을 때 대회장 밖에서 이 대회를 반대하는 여성들이 ‘자유의 쓰레기통(freedom trash can)’이라고 이름을 붙여 치마, 속옷, 속눈썹 등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인 게 시작이다.

탈 코르셋 운동은 미국 여성 해방 운동의 주요 의제로 현재 우리나라 여성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주도하고 있는 인증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마다 곱슬머리를 헤어 드라이기로 쫙쫙 폈어요. 짝눈이 콤플렉스여서 젤 아이라이너를 눈 위에 두껍게 발랐고요. 아무리 늦어도 꼭 화장은 했죠. 심지어 저는 화장을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너는 왜 화장을 안 해?’ 라고 물어볼 정도로 화장을 열심히 하고 다녔어요. 몸에 딱 붙는 치마도 즐겨 입었고요. 그런데 그런 꾸밈노동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했던 행동인 걸 몰랐다가 탈 코르셋을 실천하면서 비로소 깨달았어요. 사실 운동을 실천하게 된 이유는 전 남자친구와 페미니즘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게 되면서부터였어요. 갈등이 생겼고, 그럴수록 페미니즘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됐죠. 그리고 그곳에서 탈 코르셋을 접했어요. 운동을 실천하니까 삶의 질이 완전히 바뀌었죠. 이를테면 아침에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어요. 남들은 씻고 나서 화장하고 머리를 다듬는데 시간을 소비하지만, 저는 씻기만 하면 되니까요. 제가 편하고, 제가 만족스러운 게 1순위이기 때문에 이제는 제 건강이나 내면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더운 날 갑갑한 속옷에서도 해방 됐다”(20대 후반 직장인 록시)

“시력이 좋지 않아서 하드렌즈나 안경을 껴야 했는데, 최근 탈 코르셋 운동을 하면서 3개월 간 안경을 쓰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쑥스럽고 낯설었는데 막상 익숙해지니까 무척 편하더라고요. 또 와이어가 들어간 속옷 대신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뻐근해도 후크가 풀릴 까봐 기지개도 피지 못했는데 요즘은 매우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죠” (24살 전북대 학생 김재이)

‘천천히 코르셋 벗기’라는 제목으로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의 탈 코르셋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future womann은 “탈 코르셋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회적 미의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옭아매던 것을 그만두기 위해 시작하게 됐다”며 “탈 코르셋을 시작하면서 제 생활에 집중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되니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여유를 경험하게 됐다”고 말한다.

탈 코르셋 현상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꾸밈 노동'이 의무시 되어 왔던 뷰티 유튜버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13년부터 미용 정보를 공유해 온 뷰티 크리에이터 ‘밤비걸’은 최근 올린 동영상을 통해 “화장법과 관련된 영상을 찍으면서 항상 더 예뻐져야 할 것 같고 완벽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계속 타인과 비교하고 평가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남들이 어떻게 볼까 고민하는 시간을 아껴 나를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에 여유가 많이 생겼다”고 덧붙이며 더 이상 뷰티 영상을 제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북대 사회학과 정미경 교수는 탈 코르셋 운동을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단지 페미니스트 운동이라고 설명하기엔 여성들의 억압과 차별을 지속시켜 온 구조적 문제도 짚고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탈 코르셋 운동이 단순히 여성의 몸에 씌워졌던 굴레를 벗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속에서의 여러 가지 법과 제도, 이중적인 성차별 규범 등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행동이다”고 말한다.

즉, 남성중심 가부장적 구조에서 사회가 원하는 모습대로 맞춰 살아가는 데 집중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주어지게 되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분석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7년부터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내가 아닌 타인에게 가해지던 폭력들에 대한 미러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곧 자신의 권리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탈 코르셋 운동은 단순하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겠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다움에 대한 억압, 여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며 여성의 삶을 옭아매는 여성다움을 둘러싼 규범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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