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식과 집들이
낙성식과 집들이
  • 김남중
  • 승인 2018.07.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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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단독주택을 조그만하게 지어서 집들이를 했다.

한달 동안 이루어진 집들이에 아내가 몸살이 날 정도가 되었다.

옛날에는 집들이를 낙성식이라 하여 지금보다 더 거창하게 이루어 졌다.

우리네 살림집의 낙성식은 집들이고사로 치러졌다.

고사상을 차려놓고 천지신명에게 가족의 건강과 부귀공명을 기원하면, 농악대는 지신을 밟고, 상쇠잡이는 덕담을 늘어놓는다.

이후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며, 하객들은 성냥, 초 등을 가져와 불처럼 집안이 융성하기를 기원한다.

이에 비하여 공적건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낙성식을 하게 마련이다.

역사상 가장 성대한 낙성식은 성경에 기록된 솔로몬의 성전이다.

14일간 화목제물로 소 2만2천 마리를 바쳤고 전 이스라엘인이 동참하였다.

한국의 경우, 고려조 문종은 흥왕사 낙성식에 계행자 일천 명을 뽑아 그들과 함께 5주야 동안 연등대회를 열었다.

신라 효소왕이 망덕사를 지었는데, 누추한 승려가 찾아와 낙성식에 참여를 부탁하였다.

왕이 행사를 끝내고 그 승려를 놀릴 마음으로 어디에 사는가를 묻자, 그는 비파암에 산다고 하였다.

왕이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왕이 직접 참가한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자, 그는 ‘왕 또한 진신석가를 공양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하고 갑자기 남쪽으로 날아갔다.

왕이 너무 놀라 절하고 찾으니 남산 참성곡에 지팡이와 바리때각 있어, 그곳에 절을 짓고 석가사라 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김옥균은 우정국의 낙성식을 이용하여 3일천하의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의병이며 독립운동가인 당진출신 남정선생은 1926년 조선총독부 신축청사 낙성식에서 이를 폭파하려다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요즈음 새 아파트라도 장만하면 집들이 행사를 동창별 처가 친가 등으로 나누어 주말마다 거의 한 달을 치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나 또한 집들이를 한 달은 한 것 같다.

낙성식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테이프 커팅이다.

건축사사무소 30년 동안 그 행사에 십 수 번을 참석했지만, 테이프커팅에 참여한 것이 몇 번에 그친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감사패 받는 의전까지도 항상 건설사의 뒤에 서는 것으로 굳어진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날 이렇게 초라한 건축사의 자화상이 자부심으로 살아날 때는 언제쯤 올까? 그 시절이 되어야만 이 땅의 건축문화는 화려하게 꽃 필 것이다.

/주)라인 종합 건축사 사무소 김남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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