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으로 번지는 '탈 코르셋'
#중 - 탈 코르셋을 실천하는 사람들

타인의 시선에 불안-강박 느껴
건강-개인 취향 표현 어려워

사회가 정한 여성상 탈피해
자신만의 개성-성상 찾을것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니까 한결 편해졌다.

아름다운 몸매를 향한 동경도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전북대학교에 다니는 김재이(24)씨는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살을 좀 빼면 더 예쁠텐데…’였어요. 학창시절엔 과체중과 경도비만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는데 그때는 제가 매우 뚱뚱하다고 느꼈어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

지난날 김씨는 전신거울에 몸을 비춰보지도 않았고,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도 지레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옷을 포기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특히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제 몸을 보면서, 또는 저를 보면서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완성된 나’의 모습은 체중을 감량한 모습이었어요.”

모든 사람이 그에게 “너는 살을 빼게 될거야. 그리고 당연히 살을 빼야 해. 한창 젊고 예쁠 아가씨인데.”라고 말했다.

그러니 ‘완성된 나’의 모습이 보여 지기 전까지는 새 옷을 사는 일도 미뤄야만 했다.

“우리나라는 77사이즈라고 하면 빅 사이즈로 보잖아요. 그게 감당이 안됐어요. 이대로 빅 사이즈 옷을 사면 제가 정말 비만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항상 같은 옷을 어떻게든 돌려 입었죠. 그러다 보니 뭔가 허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 몸에 있는 살이란 살을 몽땅 잘라내고 싶었죠. 점점 제 자신을 미워하고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고 그러면서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김씨는 자신이 살면서 이상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그곳에서 찾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내 몸을 사랑하는 일이다.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예뻐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것 대신 자신의 건강과 삶에 집중하게됐다.

튼살과 볼록한 아랫배, 두꺼운 팔뚝이 옷으로 가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중히 아껴줘야 할 몸의 일부분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고 싶은 옷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옷이 자신에게 어울릴지 고민하고 이것저것 사보는 용기도 생겼다.

외형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탈 코르셋 실천은 그리 어렵지 않게 술술 풀려갔다.

“오늘은 피곤한데 선크림만 바를까? 와이어가 불편하니까 스포츠브라로 바꿔볼까? 그렇게 자신감이 쌓이고 편안해지니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다운’ 행동에도 반기가 생겼어요. 불쾌한 상황이 생기면 웃어넘기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제 의견을 피력했죠.”

김씨는 짧은 머리 혹은 삭발, 화장하지 않은 얼굴, 노출이 없는 옷,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가슴, 제모 되지 않은 겨드랑이 등 현재 탈 코르셋 운동을 통해 행해지고 있는 현상을 꼭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보다 자신을 묶어두었던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이 진정한 ‘탈 코르셋’의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탈 코르셋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회는 여성에게 ‘적당한 코르셋’을 요구하니까요.

머리를 길러야 여자답다고 하지만, 아주 긴 머리를 보면 귀신 같다고 놀라요.

그리고 화장한 얼굴이 ‘예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진한 화장을 보면 징그럽다고 하죠.

그러니 코르셋은 양 대치점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반대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중간만 허용하는 사회의 규범을 깨부수는 게 맞지 않을까요?”페미니스트 록시(닉네임)는 통역 일을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그는 탈 코르셋을 점진적으로 실천해왔다.

처음에는 긴 머리를 잘랐고, 다음에는 색조를 연하게 했다.

그리고 피부화장을 안했다.

제일 포기하기 힘들었던 립 제품을 버린 후, 비로소 화장과 멀어지게 됐다.

화장 뿐 아니라 속옷착용과 제모관리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통역일을 하고 있는 저는 대외적으로 보여 지는 업무가 많아요.

때문에 H라인 스커트와 자리에 맞는 화장은 필수였죠.

심지어 친구들이 저에게 ‘치마 불편하지 않아? 물어보면 저는 편하다고 답했을 정도로 치마 입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가 꾸미는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학습화 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꾸밈노동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성성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죠”1년 가까이 탈 코르셋을 실천하고 있는 록시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소 1시간씩 걸리던 출근 준비 시간이 이제는 10분 남짓으로 확 줄어들었다.

꾸밈 노동으로 흘려 보냈던 돈과 시간을 절약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더 몰두하게 된 것이다.

탈 코르셋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탈 코르셋’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계기가 바로 탈 코르셋이에요. 꾸밈노동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서 얼마나 나은 삶이 되었을까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변화의 삶을 개개인이 흡수해 겪어보게 된다면 정말 차원이 다른 삶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잠을 조금 더 자고, 비용을 아끼는 일을 넘어서 꾸미지 않아도 나는 예쁘고, 사랑 받을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 그게 정말 값지다고 생각해요. 내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게 됐어요”(록시)  

“탈 코르셋은 절대 어려운 게 아니에요. 나는 이게 좋은데, 남은 이게 싫다고 해요. 그럼 거기에서 그만두지 않고, 그래도 끝까지 하는 것. 반대로, 나는 이게 싫은데 남은 이걸 하라고 해요. 그럼 그만두면 돼요.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서 점점 자신을 억압했던 것들에서 하나, 둘 벗어나면 되는 거죠. 저는 탈 코르셋 현상이 커지고 지속될수록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을 모조리 부숴버릴 괴짜들이 늘어나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김재이)

/박은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