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유성엽 전당대회 앙금 남겨선 안돼
정동영, 유성엽 전당대회 앙금 남겨선 안돼
  • 김일현
  • 승인 2018.07.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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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野人)이었던 정동영은 2016년  2월19일, 순창군 복흥면 비석마을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전북정치 복원과 호남정치 부활에 정동영이 맨 앞에 서겠다, 국민의당 동지들과 함께 불평등 사회를 해소하고 민생정치를 구현하겠다”고 말했고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DY의 국민의당 입당으로, 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전북 국민의당은 ‘정동영-안철수-유성엽’의 삼각편대로 선거가 치러졌다. 호남정치 복원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압승했고 전북에서도 10곳 중 7곳을 휩쓸었다. 

DY의 국민의당 입당을, 국회에서 추진했던 이는 유성엽이다. 2015년 12월17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유성엽 의원은 “두 분이 함께 하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말한 둘은 안철수, 정동영이었다. 

이후 안철수는 유성엽, 황주홍, 문병호 등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신당을 출범시켰다. 신당의 기세는 높았다. 호남을 중심으로 바람이 계속 불었다. 유성엽은 안철수에게 말했다.

“전북 선거에는 정동영 선배가 꼭 필요하다. 순창을 찾아가야 한다”고 수차 압박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6년 2월18일 순창에 내려가 정동영과 회동했다. 물론 유성엽도 그 이전, 순창을 수 차례 찾았다. DY는 국민의당을 통해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DY의 국민의당 입당은 실제로는 순탄치 않았다. 국민의당 안팎에 정동영을 견제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정동영이 입당하면 국민의당은 결국 DY당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 탓이었는지 정동영의 입당 가도에 몇몇 인사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고 입당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늦춰졌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단 DY의 국민의당 입당 후 전북 선거 분위기는 급상승했다.

‘정동영-유성엽’이 선거전 전면에 나섰고 초선의 김관영은 군산을 지켰다.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전북은 정동영, 유성엽, 김관영을 포함해 7명의 당선자를 냈다. 당시 민주당 소속의 이춘석 의원이 익산갑에서 버티지 않았다면 국민의당 전북 싹쓸이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총선이 끝난 지 사흘 뒤인 2016년  4월16일 저녁. 전주 중화산동의 한 음식점에서 국민의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축하모임이 있었다.

7명의 당선자들은 전북정치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술을 많이 하지 않는 정동영과 두주불사(斗酒不辭) 유성엽도 그 날은 힘차게 건배했다. 

정동영, 유성엽 두 의원은 전북 정치의 현재를 만들어 온 주인공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전북 정치가 어떻게 변했을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정치인이 중앙 무대에서 전북 목소리를 높여 온 것만은 사실이다. 정당내 비민주성에 맞서, 또 당 지도부의 독단적 행태에 맞서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대응하며 이 자리까지 왔다. 

오는 5일 치러지는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유성엽 두 의원이 대표 자리를 놓고 맞붙었다. 광주의 최경환 의원이 가세하면서 승부를 예상하기 쉽지 않아졌다.

누가 당 대표가 되든 평화당의 선거 후유증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정, 유 두 의원은 선거가 끝나면 서로 축하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과거 한솥밥 시절을 잊지 않기를 주문한다.

/김일현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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