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2일 삼례문화예술촌
일제강점기 역사적 아픔
처절한 삶의 소리 담아내
음악-서사-연출 뛰어나

공들여 만든 티가 나는 작품들은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내밀하고, 섬세하게 관객들을 이끌어간다.

모처럼 만의 일이었다.

음악, 서사, 연출 크게 모난 데 없으면서도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을 보게 된 것 말이다.

지난 17일 완주문예회관에서 열린 소리연극 ‘삼례, 다시 봄!’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를 담당했던 삼례 양곡창고를 중심으로 당시 농민들의 처절한 삶을 소리로 풀어낸 연극이다.

지난해 첫 선을 보였던 이 작품은 쌀 수탈 관련 근대역사문화자원을 통해 일제강점기 시절 쌀 수탈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공연은 조그만 논을 소유한 전북 삼례의 작은 마을 자작농인 ‘대복’의 가족과 소작을 하는 ‘덕구’네 가족이 평소처럼 풍년을 기원하며 시작된다.

땀의 가치를 아는 대복은 대대로 조상이 물려준 땅에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며 살아가지만 일제 토지 수탈로 물려받은 땅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대복과 어릴 적 동무이자 일본인 지주 농장에서 마름 노릇을 하며 일본 앞잡이가 된 판수와의 갈등이 날로 심해진다.

그러나 엄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올 것이라 믿는 이들의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

소리연극 ‘삼례, 다시 봄’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역사적 아픔을 보여주지만 오늘날 갑을관계로 치환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그 시절 농민들이 겪은 핍박과 고통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겪어보지 못했기에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다소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갑질에 시달리고 있는 을의 입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일본의 갑질을 상황적으로 묘사한다.

이를테면 ‘땅’을 지키기 위해 대복이 분투하지만 일본의 갑질로 대복은 재산도 잃고, 자신의 딸 순덕의 순결도 잃게 된다.

또 경성에서 기술을 배워 돈을 벌겠다고 고향을 떠난 덕구는 일제치하의 갑질에 시달려 절름발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 등 그 시절 일본의 만행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더불어 창작진이 작품 속 곳곳에 깔아놓은 은유적 메시지들은 곱씹을수록 생각해 볼 것들이 많다.

대복의 처는 땅에 집착하는 대복에게 지긋지긋한 땅이라며 진저리를 치지만 대복는 끝까지 ‘땅’을 지켜내고자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일본으로부터 우리의 것, 조선의 것을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라는 조선인의 의지.

한국인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또 일본의 앞잡이로 조선 이름까지 버린 판수(일본명 가네무라)를 따뜻하게 품고 용서하는 대복노모의 마음은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살았던 그 시대의 가치관을 표현한 듯 다양하게 생각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연주되는 음악들은 소리연극이라는 특성답게 배우의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꽉 찬 고음으로 극장을 메우려 하기보다는 잔잔한 가운데 격렬한 감정을 몰아치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배우가 소리 내 크게 울지 않아도 애절한 음악이 적절히 묻어나 어느새 관객들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또한 대복 역에 김대일, 대복처 역에 정승희, 대복의 딸 순덕역에 양혜원, 대복노모 역에 서형화, 덕구 역에 이제학, 덕구母 역에 이용선 등 출연하는 이들의 연기력 자체도 극과 별개로 훌륭한 관람요소가 된다.

텅 빈 듯 하면서도 꽉 찬 무대서부터 인물이 노래를 할 때 다른 두 인물의 작은 움직임,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뱉어내는 대사 한 줄까지 곱씹어 볼 요소가 넘쳐난다.

한편, 소리연극 ‘삼례 다시 봄!’은 오는 9월 22일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에서 공연된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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