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대체 왜 시골로 돌아온 거야”친구 은숙의 질문에 주인공 혜원은 이렇게 말한다.

“배가 고파서, 진짜야 배가 고파서 온 거야” 잘 삶은 양배추처럼 포근포근했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혜원(김태희분)은 스무 살 고향을 떠난다.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는 도시 생활에서 임용고사까지 떨어지고 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는 혼자 요리를 시작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요리다.

그녀가 만들어 먹는 요리는 특별한 게 아닌 계절이 담겨있다.

너무 예뻐서 손대기 아까운 꽃 파스타.

달달한 양배추 샌드위치.

바삭바삭 아카시아 꽃 튀김.

뽀얀 속살 같은 콩국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보는 관객의 침샘을 터뜨린다.

자연을 뿌리로 한 요리에는 엄마의 레시피가 들어 있다.

엄마와 먹었던 요리, 함께 만들었던 추억의 요리를 만들면서 결국 그녀는 엄마의 인생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민하는 청춘들이 균형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닮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의 음식은 바로 위로의 음식이었다.

허기진 인생에 음식은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다보고 난 후에는 잊고 있었던 맛을 찾아 다시 힘을 얻고 싶어진다.

살면서 나에게 삶의 용기를 주었던 한 순간의 음식도 기억해 낸다.

초등학교 시절이다.

한 여름 매미소리가 노래를 부르는 뜨거운 오후에도 엄마는 항상 부엌 심부름을 시키셨다.

학교에서 막 돌아와 대청마루에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부르신다.

“고추밭에 가서 탱탱하게 잘 익은 놈으로 고추 몇 개 따오너라” “이 열무 아랫집 우물가에 들고 가서 살살 무르지 않게 씻어 오거라” “뒷마루 뒤주에 보리 쌀 있거든, 딱 한 되만 퍼서 함박에 빡빡 문질러 갖고 오렴” “행주로 밥상 싹싹 닦고, 식구 수대로 수저 젓가락 가지런히 놓고” 사근사근 부엌일을 잘하는 나에게 엄마는 참 혹독하게 일을 시키셨다.

간혹 그 혹독함에 반항을 할 때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는 부엌일을 잘해야 시집도 잘 가는 겨” 엄마의 부엌 철학에 꼼짝없이 따라야만 했던 나는 일찌감치 삼시세끼의 의미를 알았다.

삼시세끼를 못 먹으면 그것은 슬픔이라는 사실을 터득했다.

내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 것도 이 삼시세끼가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일찍 터득했기 때문 일거다.

아마도 내 인생에 음식에 대한 열정은 이 삼시세끼의 의미를 알기 시작한 그때부터인 것 같다.

또 지금의 남다른 나의 음식 감수성은 순전히 엄마의 심오한 부엌철학 덕분이다.

내 가방에는 손바닥만 한 수첩이 있다.

바로 미식 수첩이다.

살면서 먹어야 할 맛이 줄 서있다.

나는 늘 새로운 맛을 찾아나서는 설레임을 즐기고, 붉은 와인 잔을 부딪치는 일상을 좋아한다.

아직도 예쁜 그릇을 보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을 만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주방에서 오래 요리하는 일은 가장 질리지 않는 일이며.

지금도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렵다는 덴마크의 미슐랭 레스토랑 noma에서의 근사한 저녁을 나의 맛에 대한 탐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예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겠다."

라고 좋든 싫든 음식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음식을 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먹느냐는,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연결고리다.

아직도 나의 낯선 세상은 늘 혀 끝 에서 시작 된다.

매주 수요일이다.

그 낯선 맛 여행을 혼자가 아닌 독자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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