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입맛까지 사로잡아야 '진짜 장맛'

<7>건강을 되찾게 해 준 감식초의 맥을 잇는 식품명인 41호 임장옥

“전통식품인 감식초로 건강을, 삶을 되찾은 뒤 명맥 잇기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 날 명인이라고 인정을 해주더군요.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감식초 전도사일 테니까요.”

감식초를 통해 인생 2막을 열었다는 임장옥 금계식품 대표.

그는 집안에서 담그던 전통 감식초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94년 금계식품을 설립, 이후 18년 만에 대한민국 식품명인 41호로 지정됐다.

당시 식품명인 대부분이 전통술이나 전통 장류였기에 그가 명인에 이름을 올렸을 때 대단한 화젯거리였다.

웰빙 바람과 함께 식초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관심이 집중, 이전까지만 해도 식초는 단순히 양념 중 하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 명인 왜 감식초가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부터 이에 몰두했던 것일까? 그 답은 ‘절실함’에서 찾을 수 있다.

감식초에 몰두하기 전까지 그는 1973년 농협에 입사해 동기들보다 승진이 조금 빠르고 주요 요직만을 거친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잦은 술자리 탓으로 어느 날부턴가 통증을 견디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악화됐고 약이란 약은 다 먹어봤지만 낫지를 않아 끝내 항암치료까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효과가 없어 좌절할 당시 ‘감식초’를 먹어보라는 지인의 말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감식초를 찾아 나섰다.

임 명인은 “백방으로 감식초를 찾아 나섰지만 당시에는 파는 곳이 없다 보니 결국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집으로 식초를 얻으러 온 이웃주민을 보고, 어머니가 항상 담그던 감식초가 떠올랐다”며 “어려서부터 늘 먹었지만 양념의 일부라 생각했지 이게 무슨 식초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몰랐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감식초가 우리 집 부엌에 있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감식초를 먹은 지 두세 달이 지나면서부터 수년간 달고 살았던 약의 양이 줄더니 어느새 건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이때부터 임 명인은 외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감식초 담그는 법을 어머니에게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생각보다는 시중에 구할 수 없는 데다 직접 담가 먹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비만이나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감식초를 널리 알리기로 결심한 뒤 주변의 만류에도 1994년 산외면에 금계식품을 설립,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에 모든 것을 걸었다.

특히, 감식초의 주원료인 먹시감의 주산지였기에 지금의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것.

먹시감은 재래종이라 크기도 작고 씨도 많아 그냥 먹기에는 시원찮은 품종이지만 떫은맛을 내는 성분이자 항암성분인 타닌 함량이 가장 높아 건강에는 최고로 좋다.

더욱이 음식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먹시감 역시 여전히 유기농, 무농약으로 직접 재배하고 있다.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3만평을 관리하고 있으며, 인근 농가의 먹시감까지 소화하면서 농가수익 창출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빙초산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인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왜 감식초를 담그기 시작했는지를 잊지 않았으며, 본인이 효과를 봤듯이 언젠가는 건강식품으로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꿋꿋하게 버텼다.

흔들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최상품의 감식초를 내어놓기 위해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했다고.

임 명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감식초는 누룩과 감을 술로 만든 후에 다시금 자연 숙성시켜 만들어진다.

특히, 1차 홍시로 익어가는 먹시감을 숙성시킬 때 명인은 꼭지까지 모두 사용한다.

이 꼭지에도 좋은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 숙성이 말은 쉽지 최소 3년 이상 걸린다.

하지만 그냥 두는 게 숙성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철저한 관리가 생명이다.

이처럼 오랜 기다림 속에, 많은 공을 들여 얻어내는 만큼 여느 감식초보다 색상이 진하고 맛 또한 더 깊다.

산도 역시 3.5~7도로 높다는 점이 특징으로 달리 명인이 아닌 것이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그 과정을 단축시킬 수는 없는 거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감식초를 얻는데 공짜가 어디 있느냐고 핀잔이 되돌아왔다.

이제 조금 알려졌다고 대충한다면 ‘명인’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겠느냐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감식초의 효능은 ‘증보산림경제’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인 ‘항약구급방’에 기록될 만큼 우수한 만큼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식품 중 하나라고 임장옥 명인은 강조했다.

이에 “음식은 정성이 반이라는 말처럼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효능과 맛이 뛰어나기에 우리의 전통방식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고집을 현재 명인의 큰아들이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벌써 20년으로 전수자 역시 명인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 명인은 그런 아들이 아직은 멀었다고 말하면서도 묵묵히 전통방식을 고수해주고 다양한 자연발효효소 개발에도 적극적인 그에게 스승으로서, 아버지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눈치였다.

“아직도 감식초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 할 일이 여전히 많다는 것 아니겠어요.

명인이 달리 명인이겠습니까? 전통을 널리 알리는 것도 소임인 만큼 앞으로도 감식초 전도사로 열심히 뛰어다닐 겁니다.”  

<8>순창 고추장 고수들이 인정한 식품명인 64호 강순옥

한식의 근본(根本)인 ‘장류의 1번지 순창’.

장류 가운데 고추장은 아예 '순창고추장'으로, 지역명이 그대로 쓰인다.

순창은 안개일수가 70~75일로 전국평균보다 월등히 많으며, 습도가 72.8%로 높고 일교차도 15~20도로 크다.

뚜렷한 일교차와 높은 습도로 효모균 발효에 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섬진강을 끼고 있어 물이 좋으며 토양이 비옥해 농산물 품질이 좋다.

한마디로 순창은 고추장을 담그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런 지리적 장점으로, 순창고추장은 여느 지역에서 담근 고추장보다 깊은 맛이 난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으로, 순창에서만 낼 수 있는 맛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곳에는 유독 고추장 고수들이 많으며, 이들이 곧 순창고추장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수 중 단연 돋보이는 이가 있다.

바로, 순창고추장의 품격을 높이는데 일등공신이자 시대의 변화를 전통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64호 강순옥 순창장본가 전통식품 대표다.

사실, 그는 명인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순창고추장 기능인들이 인정한 고추장 고수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더 맛있는 장을 담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에 순창고추장 민속마을 내 기능인들조차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하니 명인이라는 타이틀은 당연한 건지도.

강순옥 명인의 장류 인생은 우연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창고추장의 명성을 다지기 위해 순창군에서 기능인제도를 도입, 명인 역시 일찌감치 기능인에 이름을 올렸다.

음식솜씨가 일품이셨던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닮아서인지 시어머니의 장맛까지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던 것.

그러면서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돕게 됐고, 명인의 고추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장 담그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강 명인은 “순창으로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의 장맛을 익혔지만 장을 담가 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시누의 식당 일을 돕기 위해 고추장을 담가 줬는데 사람들이 맛이 좋다고 찾아오다 보니 어느새 이 길을 가고 있었다”며 “이왕 발을 디뎠으니 제대로 하자는 마음이 들어 그때부터 장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 같다”면서 옛일을 회상했다.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순창의 수많은 고추장 기능인들 사이에서 명인의 고추장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깊은 맛’과 ‘차별성’에 있다.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담글 때 찹쌀풀을 넣지만 명인의 고추장에는 찹쌀밥이 들어간다.

이를 명인은 ‘밥 고추장’이라 부른다.

이는 강 명인의 친정에서 만들던 방식으로, 방아를 찧으러 가려면 멀리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찹쌀밥을 질퍽하게 지어 넣으면 굳이 방아를 찧으러 갈 필요도 없다는 것.

여기에 쌀눈이 삭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고추장과는 달리 식감까지 느낄 수 있어 많은 이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고의 찬사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고 강 명인은 말했다.

 그는 “물론 전통고추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품격을 높이기 위해 한길만 걸어온 노력이 바탕이 됐지만 고추장을 활용해 다양한 음식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장에만 몰두, 명인의 자리에 올라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손수 챙길 정도로 장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특히, 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메주 띄우기’는 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있다.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로, 메주가 덜 뜨면 고추장이 안 삭고 너무 띄우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소홀하게 할 수 없다고 명인은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장아찌, 소스 등 신제품 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부엌이 순창장본가 전통식품의 개발실이라고 불리겠는가.

아직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어떤 재료로 장아찌를 담그면 맛이 있을까, 새로운 장을 어떻게 개발해 볼까 하는 생각뿐이라고 하니 명인이 괜히 달리 명인이 아니구나 싶다.

강 명인은 특히, 명인에 이름을 올린 뒤로는 부쩍 ‘장류 체험’에 집중하고 있다.

식문화가 변하면서 한식의 근간인 장류가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명인으로서의 역할을 이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재료로 장아찌를 담그며 고추장을 활용해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 역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함이라고.

아무리 전통 고추장의 명맥을 이어간다고 해도 먹는 이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만큼 이를 활용한 음식을 통해 젊은세대에 전통을 맛이 무엇인지를 전하고자 한다는 의미로, 그의 평소 소신이기도 하다.

매 순간 명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는 강순옥 명인.

항상 한복을 입고 있는 것 역시 한시라도 마음가짐을 흩트리지 않기 위한 자신과의 약속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명인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 줄은 몰랐어요. 늘 하던 일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명인이니까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해서 최고의 원료를 통해 정성을 다해 장을 담그며, 그 안에서 명인으로서 역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전통이 잊히지 않게 저만의 방식으로 이를 널리 알려 명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고 합니다.”

/김성아기자 tjd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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