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고애고, 내가 짜장면을 먹는 지 짜장면이 나를 먹는 지 모르겠네!"

짜장면 한 젓가락을 입에 덥석 베어 문 친구가 울상을 지으며 입을 삐쭉거린다.

"무슨 짜장면이 이렇게 매울꼬?"

친구는 건성건성 젓가락질을 하며 물만 연신 들이켰다.

세상에서 제일 맵다는 짜장면이 있다.

매운 맛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짜장면이다.

달짝지근한 여느 중국집의 짜장면이 아니다.

눈물, 콧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그 짜장면 집은 바로 군산에 있다.

유명 요리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이제는 줄서서 먹는 중국 음식점의 명소가 되었다.

'매우면 얼마나 맵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갔다가는 매운 맛을 얕잡아 본 죄로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짜장면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매운 맛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허벅지를 꼬집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체면을 차려야 하는 사람과는 이 짜장면을 먹지 말아야 한다.

눈물샘, 콧물샘이 기본적으로 작동되고, 너무 매워서 귀가 안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인생의 매운 맛이 얼마나 독한지를 모른다면 한번쯤 이 짜장면에서 대신 느껴봐도 좋을 듯하다.

살다보면 우연한 조합이 세상을 바꾼다.

음식도 그렇다.

극과 극이 만나 최고의 맛을 만들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매운 맛이 시대의 흐름처럼 등장하고 있다.

갈수록 매운 맛의 수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적당히 매우면 맵다고 하지 않는다.

최소한 얼얼하지 않으면 매운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런 소비자의 심리를 이미 식품업계는 현실 마케팅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 기업에서 올 가을 신제품을 발표했다.

짬뽕과 육개장이다.

이 제품에는 매운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매운 맛, 2단계는 더 매운 맛, 3단계는 완전 매운 맛, 끝으로 4단계는 도저히 매운 맛이란다.

'매운 맛'이라는 감각 하나를 단계별로 세분화하여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재미있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제 고추 맛은 '매움'의 상식을 벗어나 다양하게 변신하며 진화하고 있다.

고추의 주산지인 한 군에서는 고추로 만든 무스케이크를 선보였다.

고추를 넣은 케이크,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상식을 초월한 발상이 흥미롭다.

고추 초콜릿까지 곁들였다니 매운 고추와 달콤한 초콜릿의 앙상블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고추는 왜 매울까? 강준수 교수는 고추 매운 맛의 이유를,"고추의 매운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의 원미(元味)와는 성질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원미는 말 그대로 맛이지만 매운 맛은 맛이라기보다는 혀가 느끼는 통증이다.

이 통증을 통각(통증을 느끼는 감각)이라고 하며 통각은 혀뿐 아니라 구강과 비강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고추를 먹으면 입안 전체가 얼얼해지는 것이다.

캅사이신에 의한 통각이 뇌로 전달되면 뇌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명령을 내린다.

우선 통증 원인물질을 희석시키기 위해 입 주변에 수분분비를 촉진시킨다.

이 결과 입에 침이 고이고 눈물 콧물과 땀이 범벅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매운 맛이 일종의 혀의 통증이다.

이 통증에 익숙해지면 매운 맛 중독이 된다.

단 맛, 짠 맛, 신 맛 보다 매운 맛에 중독이 되면 일단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게 중독이 지속되는 원인이다.

이 매운 맛에는 묘한 쾌감이 들어있다.

불타는 듯한 혀의 자극이 무언가 시원하게 풀어주는 듯하다.

우리는 매운 국물을 먹고도 되려 '시원하다'라는 반어적 표현을 한다.

입이 얼얼할 정도의 새 빨간 불 닭, 거기에 맥주 한 잔이면 직장상사의 쓴 소리도 잠시 잊게 된다.

혀가 불나는 듯 한 떡 볶기 한 접시 싹 비우고 나면 어떤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맵다는 느낌보다 뭔가 개운하다는 상쾌함조차 느낀다.

여름 햇살 듬뿍 먹고 자란 고추가 시골 마당에 가득하여 때가 가을임을 알린다.

사람도 견디기 힘들었던 올 여름 염천에 잘 견뎌낸 보람이다.

40년 고추 농사에 올해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는 농부의 하소연에도 벌써 고추시장이 열렸다.

바삭바삭 잘 마른 고추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농부가 흘린 땀이 켜켜이 쌓여있다.

"올 해는 말라 죽은 고추들이 많아 재미를 못 봤어" 고추를 내다 팔고 돌아서는 농부의 입에선 아쉬운 소리가 나오지만 주름으로 깊게 패인 눈가엔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올해 고추가 좀 비싸다고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수확들이다.

가을만 되면 어머니의 고추가 항상 눈에 밟힌다.

올 가을에는 고추를 얼마나 사시느냐고 헛인사로 물을 때면,  "올 김장은 한 집이 늘어서 한 30근은 사야는디 쪼게 돈이 모자라서 한 다섯 근은 뺄란다""아니에요 엄마 사고 싶은 만큼 30근 다 사세요" "그럴까 그럼, 너 믿고 다 살란다. 에미야 고맙다".

어머니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시집살이를 당신 혼자하고 계셨다.

숫제 자식들을 위해서 자청하신 게다.

가을이면 고추 사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시던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안 계신다.

올해도 고추를 다듬으며 보고 싶은 어머니를 마음껏 기려봐야 겠다.

고추의 매운 맛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흘리는 눈물인지 그 누가 알랴.

'고추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보다 더 매우랴'.

그래도 고추가 제일 맵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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