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힐링을 동시에! '남원 1박 2일'
낭만과 힐링을 동시에! '남원 1박 2일'
  • 장두선
  • 승인 2018.09.11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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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배경 '광한루원' 조선 대표 정원 명승 제33호
남원예촌 숙박시설 대한민국 최고 한옥 명장들이 시공
요천생태습지공원 체육활동-교룡산성 천혜의 요지

혼불문학관 천명희 대하소설 '혼불' 기념
비전마을 동편제 창시자 송흥록 명창 생가
지리산 둘레길 300km 국내 최초 장거리 트래킹

아! 가을이다. 진한 여름이 가고 온갖 곡식 무르익는 황금 들녘을 따라 ‘남원으로의 1박2일 여행’을 떠나보자!

1박2일 중 첫 날은 예촌, 함파우소리체험관 한옥촌, 켄싱턴리조트, 중앙하이츠콘도, 스위트호텔 등에 여장을 풀고, 광한루원, 남원예촌, 춘향테마파크, 향토박물관, 요천생태습지공원, 만복사지, 만인의총, 교룡산성, 혼불문확관, 황산대첩비지, 동편재 탯자리 비전마을, 국악의 성지, 실상사 등에서 여행을 한다.

하루에 이곳을 다 들르기에는 여정이 빼곡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잡아 여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2일 날은 지리산둘레길 1코스-구룡폭포-육모정으로 내려오는 트레킹코스가 있고, 정령치에서 시작하여 서북쪽 능선을 타면 고리봉-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이 이어지고,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묘봉치-고리봉-성삼재로 연결되는 산행을 할 수 있다.
/편집자주


# 광한루원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고전 춘향전의 발상지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 영원한 "사랑의 지침서" 역할을 해오고 있는 "춘향전"은 남원의 풍요로운 마음과 정절의 풍습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광한루원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낸 공간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명승 제33호이다.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 정도로 만듦새가 뛰어나다.


# 남원예촌 

남원예촌은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한 이근복 번와장, 유종 토수 등 대한민국 최고의 한옥 명장들이 직접 시공에 참여해 옛 선조의 지혜와 가치를 살리고 공정마다 혼을 담아 품격을 더하기 위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인 전통한옥 숙박시설이다.

특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구들장은 물론, 마무리 작업은 옻칠 기법을 적용하는 등 기품 넘치는 전통의 멋을 간직한 명품 한옥이다.


# 춘향테마파크 

광한루원에서 나와 그 옛날 선녀들이 춤과 노래로 삼경을 보내다 새벽닭이 울 때 달기둥을 타고 승천했다는 승월교를 건너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춘향테마파크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세트장을 비롯해 다섯 개의 사랑 마당으로 춘향의 일대기를 체험해 볼 수 있다.


# 향토박물관 

남원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 바로 남원향토박물관이다.

남원시 양림길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남원지방의 모든 문화유산을 망라해 정리했다.

2004년 5월1일 개관한 이 박물관은 부지면적 8,169㎡, 건축 총면적 1,382㎡의 지하 1층•지상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원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민속부분을 쉽고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전시실과 기획전시살, 영상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원향토박물관에는 총 2,500여 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 요천생태습지공원

친수공간으로 연중 개방되고 있는 주생면 중동리 매립장 부지 일원 15만㎡ 부지에 조성된 요천생태습지공원의 주요시설로는 생태탐방로·시민휴식시설, 관찰 및 전망데크, 자작나무 숲, 무궁화 동산, 억새숲, 야구장, 다목적구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생태습지공원은 하수종말처리장 방류수를 활용한 친환경 습지로 저류지 기능을 통한 홍수피해 예방, 혐오시설 집단지역 정비 및 생태체험공간 조성, 시민 생활체육공간 마련 등의 효과가 있고, 수련·마름·창포 등 정화식물을 이용해 자정능력을 향상시켜 친환경적으로 요천 수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광치천 하류와 요천합류지점에 자전거이용 교량을 설치,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해 섬진강 자전거 라이더들이 생태습지공원에서 쉬어갈 수 있도록 조성했다.


# 만복사지

이 곳은 고려 문종(재위 1046∼1083년) 때 처음 세운 만복사가 자리했던 터이다. 처음 지었을 때 경내에는 동으로 만든 거대한 불상을 모신 이층법당과 오층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근래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가운데 목탑을 세우고 동·서·북쪽에 각각 법당을 배치한 일탑삼금당(一塔三金堂)식 배치였다. 이 사찰은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무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중기까지 번창하던 만복사는 정유재란(1597)때 불타 없어졌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석탑과 돌 유물 몇 개가 절터를 지키고 있어 일면이나마 웅장했던 옛 사찰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경내의 국가지정문화재 : 오층석탑(보물 제 30호), 석좌(보물 제 31호), 당간지주(보물 제 32호), 석불입상(보물 제 43호)


# 만인의총
이곳은 정유재란 때 왜적을 맞아 남원 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민·관·군을 합장한 무덤이다. 남원은 호남 곡창의 관문이자 서울로 통하는 길목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선조 30년(1597) 8월 오만육천의 왜군이 남원 성을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성안에서는 정기원, 이복남의 지휘 아래 민관군이 굳게 뭉쳐 성을 방어했다. 결국 성이 함락되어 거의 만 명에 달하는 주민과 관군이 죽음을 맞았다. 파괴 또한 극심하여 성안에는 겨우 민가 17가구만이 남았다. 난이 끝난 뒤에 순절한 이들을 한 곳에 묻고 그들을 추모하는 사당을 지었다.

광해군이 이 사당을 충렬사(忠烈祠)라고 이름 지었다. 근래에 무덤과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두려움과 고통을 감내한 의로운 선조의 강직한 절개가 새삼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 교룡산성

돌로 쌓은 이 산성은 해발 518m인 험준한 교룡산을 에워싼 것으로 둘레는 3.1km 가량에 이른다.
산 중턱에 성벽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며, 동쪽에 계곡이 있어 그곳에 반월 출입문을 두었다. 성을 처음 쌓은 내력은 분명치 않으나, 그 터와 형식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1592) 때 승병대장 처영(處英)이 고쳐 쌓았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밀덕봉과 복덕봉 등 산세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유사시 인근 주민이 대피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지였다.
 

# 혼불문학관

대하소설 '혼불'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문학관이다. 남원시 사매면 노봉안길에 있다. '혼불'은 최명희 대하소설의 제목이다. 전라도 방언으로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 혹은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맑고 푸르스름한 빛'이 혼불이다. 

최명희는 남원시 사매면을 배경으로 1930년대 매안이씨 삼대종부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 민초들의 이야기를 적확한 문체와 빼어난 문장으로 풀어낸다. 혼불은 1990년대 우리문학이 이룬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혼불은 그러나 미완으로 끝나고 만다. 최명희가 지병인 난소암으로 1998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혼불문학관은 전시관과 꽃심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관에는 최명희의 육필원고와 소설의 장면을 형상화한 디오라마가 있다. 꽃심관은 쉼터와 같은 곳이다. 사랑실과 누마루가 있다.


# 황산대첩비지

이 곳은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적지이다. 금강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고려군은 이성계를 최고지휘관으로 삼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李豆蘭)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 이에 힘들어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완전히 섬멸하였다.

선조 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金貴榮)의 글, 송인(宋寅)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부수었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왜구의 침탈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 동편제 탯자리 ? 비전마을
본래 운봉의 서면(西面) 전촌리 지역을 비전(碑殿)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촌리(前村里), 옥계리(玉溪里), 소석리(小石里) 일부가 병합되어 화수리(花水里)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시작은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곳에는 구한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는 바로 동편제의 탯자리가 있다.

서편제와 더불어 판소리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동편제가 바로 이곳에서 첫소리를 냈다. 동편제 창시자로서 판소리계에서 최고의 칭호인 가왕으로 불리는 송흥록 명창이 이곳 비전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200년 판소리 역사속의 허리 역할을 단단하게 해낸 인물로 꼽힌다. 송흥록 생가 옆에는 국창 박초월 선생의 생가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송흥록 선생의 판소리 하는 모습과 고수의 조각상이 서 있다.


# 국악의 성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 운봉에 위치하고 있는 국악의 성지는 우리 민족의 전통과 혼이 담긴 국악의 본 고장이요, 성지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염원을 모아 조성하였다.남원은 판소리 다섯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가 될 만큼 예로부터 국악의 산실이었으며 오늘날 동편제 판소리를 정형화한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국악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며 우리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 이며 춘향가 흥부가의 배경지로서 국악의 역사가 보존 전승되어온 국악 본고장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판소리의 유네스코 세계문형문화유산 등록에 따른 국악의 보존·전승·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여 전통문화의 고급화·관광 상품화를 통한 세계화를 도모하기 위해 바로 이곳 남원 운봉에 ‘국악의 성지’가 설립된 것이다.


# 실상사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이 절은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스님이 처음 세웠다. 신라말기 불법보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 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는데, 실상사가 그중 하나이다.

정유재란(1597) 때 모두 불타 숙종(1674~1720) 때 건물 36동을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하였다. 실상사는 훌륭한 스님들을 많이 배출하여 한국 선불교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경내에는 국보인 백장암 삼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 이 절의 역사적 의의와 품격을 대변해 준다.

천왕봉을 정점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이 절 앞으로 성큼 다가와 부처의 자비를 보이듯 포근히 감싸 안고, 지리산에서 발원한 맑고 투명한 반선계곡 물이 속세의 번뇌를 씻어 주려는 듯 절 옆을 돌아 굽이쳐 흐르고 있다.


# 정령치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의 전설이 있는 정령치는 높이 1,172m로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이다.  정령치는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의 [황령암기(黃嶺庵記)]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지리산 주능선이 한 눈에 고개 꼭대기의 정령치 휴게소는 지리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동으로는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이, 서쪽으로는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등과 남원의 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지리산 주능선 일 백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서북쪽 능선을 타면 고리봉-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이 이어지고,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묘봉치-고리봉-성삼재로 연결된다. 주천면사무소를 출발해 내기리를 거처 정령치까지 이르는 12km의 코스는 가을 지리산을 만끽하는 최고의 드라이브길이다.


# 지리산둘레길 1코스

지리산둘레길은 117개 마을의 옛길과숲길, 고갯길, 강변길, 논둑길등이 이어진300여km의 국내 최초의장거리 트레킹코스이다. 

민초들의 삶이녹아있는 지리산은언제나 사람들을반겼다. 바로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이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다.

사람들은봇짐을 지고, 마을과 마을, 장터와 장터를오가며 지리산에둘레길을 남겼다. 그래서 지리산둘레길에는 우리 조상들의오래된 생활문화가 녹아 있다. 봇짐 장사들은또 지리산의고을과 고을을넘나들며 둘레길에이야기와 소리를녹여 놓았다. 판소리 동편제도이렇게 탄생했다.

지리산둘레길의 중심에는남원이 있다. 시작과 끝도남원이다. 1구간주천~운봉, 2구간 운봉~인월, 3구간 인월~금계에는 보석같은 비경이숨어있다.

1구간 주천~운봉은 14.3km로 운봉의 너른들과 지리산북사면을 보면서걸을 수 있다. 이 길은 구룡치를넘어 옛사람들이 남원장을 보러다녔던 장길로옛길 흔적이가장 많아남아 있는곳이다. 


# 구룡폭포

구룡폭포(九龍瀑布)는 지리산 서쪽의 만복대(1,438m)에서 발원해 남원시 주천면으로 흘러드는 원천천(元川川) 중간에 형성된 구룡계곡 최상류에 위치한 폭포다. 원천천 상류에 있어 원천폭포라고도 불린다.

구룡폭포의 길이는 약 30m에 이른다. 그렇지만 가파른 절벽을 흐르는 직폭이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바위면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와폭이다.

만복대에서 발원한 계류가 여기에 이르러 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어 두 갈래 폭포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꿈틀거리듯 하므로 그곳을 교룡담이라 한다. 이곳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므로 구룡폭포라 불린다.

구룡계곡은 계곡 전체가 마치 하나의 통바위처럼 연결돼 있다. 이 계곡 안에 수많은 폭포와 담과 소가 절경을 이룬다. 마을 이름인 호경리(湖景里)도 구룡계곡의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붙은 이름이다.

구룡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구곡(九龍九曲), 혹은 용호구곡(龍湖九曲)이라 한다. 제1곡은 송력동(松瀝洞)폭포, 제2곡은 옥용추(玉龍湫), 제3곡은 학서암(鶴捿岩), 제4곡은 서암(瑞岩), 제5곡은 유선대(遊仙臺), 제6곡은 지주대(砥柱臺), 제7곡은 비폭동(飛瀑洞), 제8곡 경천벽(敬天壁), 제9곡은 교룡담(交龍潭)이다.

/남원=장두선기자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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