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며느리들이 슬슬 돌아 올 채비를 하고 있다.

가을바람을 타고 콧속을 파고드는 구수한 전어 굽는 냄새를 버틸 재간이 없었음이리라.

횟집 문 앞마다 때를 놓칠세라 내건 '가을 전어가 도착했습니다.

'라는 문구만 보고도 벌써 군침이 돈다.

바야흐로 가을의 대표 맛, 전어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 없는 빵빠레다.

내가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아버지는 집 마당에 숯불을 펴 놓고 석쇠 위에 전어를 노릇노릇 구워내기에 바쁘셨다.

숯불 냄새가 잘 배어 익혀진 첫 마리는 항상 우리 집의 '귀요미' 딸 내 차지였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이었던지라 아버지가 몰래 나에게 첫 전어를 건네주시다가 들켜서(?) 다른 형제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었다.

나에게 전어는 계절의 별미이자 북적북적 부대끼며 자라 온 형제들과의 추억이다.

요즘은 집에서 굽는 수고로움을 거쳐 가을 전어를 먹는 일이 별로 없다.

숯불에, 모닥불에 눈물 콧물 흘려가며 연기에 그을린 전어를 굽는 대신 가까운 횟집에 가면 간편하고 넉넉하게 돈이 구워 준 전어를 맛볼 수 있다.

  혀의 기억은 참으로 강하다.

음식의 기억은 각인된다.

어릴 적 먹었던 한 번의 음식이 평생 좋아하는 음식이 되는 이유다.

내게 가을 전어 맛이 그렇다.

가을 초입의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무조건반사 신경처럼 기억 속의 맛이 튀어나온다.

필경 허기진 기억을 채워야하는 맛이 바로 전어다.

전어는 광어나 숭어 참치보다 작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듯 전어는 맛에 있어서는 그들의 그 것과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어는 구이는 물론 회, 무침 , 전, 젓갈 등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메뉴도 다양하다.

그중에 단연 으뜸은 역시 불에 구워먹는 구이다.

전어구이는 냄새가 참으로 유혹적이다.

사실 입 안에 들어온 맛보다, 불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그 고소한 냄새가 치명적인 유혹이다.

오죽했으면 집나간 며느리가 그 냄새가 그리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겠는가.

비릿한 생선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전어구이를 맛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구이의 구수한 냄새가 생선의 비린 냄새를 잡아준다.

설마하며 처음 전어 구이를 맛보는 사람도 이내 맛에 끌려 코를 빠트리고 먹는다.

'먹을 때는 가시를 조심해야해 라는 주의사항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허겁지겁 발라먹는 데 정신이 없다.

  전어는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부는 이때가 가장 맛있다.

맛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어는 봄에 알을 낳고, 부화한 새끼는 여름 내내 플랑크톤이나 유기물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가을이 되면 20cm 정도로 성장하는데, 이때를 전후해 지방질이 봄이나 겨울에 비해 최고 세 배까지 많아진다고 한다.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오르는 철이 바로 지금, 9월과 10월사이라는 것이다.

생선은 어느 정도 지방이 있어야 맛있다.

지방함량이 많은 이즈음 전어 몸값이 가장 높아지는 때인 이유다.

또 전어는 비늘이 많을수록 좋다.

윤기가 나고, 배 부분이 은백색을 띠는 것이 싱싱하다.

등은 초록빛을 띄는 게 싱싱한 전어다.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다.

전어의 백미인 바로 '대가리'를 먼저 먹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는 단골 횟집 사장님이 살짝 알려주는 비결이다.

'대가리'가 조금은 상스럽게 들린다고 하자 '머리'보다 '대가리'라고 해야 왠지 더 맛이 있어 보인다며 횟집사장님이 일부러 즐겨 쓰는 전문용어란다.

전어구이를 통째로 먹어야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전어는 숯불에 굽는 과정에서 머리가 연기를 가장 많이 흡수한다.

그래서 전어구이는 머리가 백미다.

노릇노릇 잘 구워져 흰 배가 살짝 나오는 전어는 일단 머리 부분을 잡는다.

그리고 통째로 입 안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나서 아가미 밑 부분을 지그시 누른 상태에서 잡아당긴다.

그러면 영락없이 살은 입안에 남고, 뼈만 고스란히 발라져 나온다.

생선을 좀 먹어 본 사람은 안다.

미각의 근원은 항상 제대로 먹는 것에 있음을.

전어도 그렇다.

제대로 먹어야 그 백미를 놓치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먹는 즐거움을 위해서는 없는 시간도 기꺼이 만들어야 한다.

이번 주말은 전어 구이를 먹어야겠다.

가을 식욕을 촉발시키는 신호탄, 전어가 쏘아 올린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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