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들과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자연스럽게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으며, 이런 저런 대화 중 한 분이 ‘지금은 각자 작은 국을 덜어 먹기는 하나, 옛날에는 국그릇에 수저를 함께 담가 먹었지’라며 우리나라는 식문화는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난 음식에 대한 식견이 없는 관계로 별 뜻 없이 받아드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이 들어 함께 근무하는 한식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시대 우리조상들의 식사 방식은 계층별로 환경에 따라 달리 행해졌으나, 일반적은 두레상과 독상으로 구분되어지고. 임금의 수라에서 백성의 가장까지 겸상을 하지 않았다.

또한 궁중과 반가에서 손님에게 다과상을 차려내어 놓을 때에도 일인일상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남는 음식은 한지에 싸서 가져가도록 했다.

내림상의 전통이 있었는데, 이는 임금 또는 주인은 차려진 음식을 정갈하게 조금씩 먹고 상을 물리면 안식구들이 밥만 차려 먹었다. 사대들과 안주인은 식탐을 경계했고 대부분 소식으로 상을 물렸다고 전해진다.
 
『설하멱(雪下覓)
눈 오는 날 찾는다는 말인데, 근래 설이목이라고 음이 잘못 전해진 것이다.
등심살을 넓고 길게 저며 전골 고기보다 훨씬 두껍게 썬다.칼로 자근자근 두드려 잔금을 내어 꽂이에 꿰어 기름장에 주무른다. 숯불을 세게 피워 위에 재를 얇게 덮고 굽는다. 고기가 막 익으면 냉수에 담가 다시 굽기를 이렇게 세 번 한 후 다시 기름장, 파, 생강 다진 것과 후추만 발라 구워야 한다. - 규합총서 -』
 
식문화의 시대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 예가 있다. 그건 바로 ‘한일통상조약체결 기념연희도’이다.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고 일본 대신을 위한 서양식 만찬을 차린 모습을 담아낸 ‘한일통상조약 체결 기념 연희도’ 에서 만난 우리의 모습은 개화기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첫째 내외가 엄격한 시대였음에도 공식 연회에 여인을 대동하고 있다는 점, 둘째 메인디시가 생선요리인 것으로 보아 식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스프, 빵, 샐러드, 커피를 포함하는 후식 코스 요리사 선보였으리라는 점, 셋째 사람 앞에 놓인 술잔이 어럿인 것으로 보아 몇 종류의 술을 마셨다는 점, 넷째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연회에서 서양식 상차림 법을 적용할 정도로 서양 요리를 조선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 다섯째는 주빈과 주인의 좌석배치가 격식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 한식재단. 화폭에 담긴 한식 중』
 
위의 내용과 같이‘눈 오는 밤의 풍류를 맘껏 즐기며 먹었던 설하멱(雪下覓)’와 ‘한일통상조약체결 기념연희도’를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의 식문화를 단순히 먹거리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민족의 정신적  물질적 산물이며, 이를 서구문화와 비교하여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것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 이영욱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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