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우리들의 자화상 시 속에 실어
독자들의 잃어버린 감각과 사유 자극

최동현 시인이 30년 만에 시집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그대여’를 펴냈다.

한 때 시가 전부였지만 겨우겨우 시집 한권을 묶어낸 시인은 시집 속 시들이 “알갱이보다는 쭉정이가 더 많다”고 밝힌다.

하지만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지 않은 채, 순결하고 서늘한 눈빛으로 시 한 수 한수에 사회적 풍토와 시각을 담아낸 시인의 시들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지나간 한숨들을 지우며/강둑에 쌓인 눈은 아름답다/고릿적 깊은 근심/고운 연기로 깔리는 들녘,/길게 누워 바라보는/저녁답의 눈들은 아름답다/먼저 간 사람은 먼저 간 만큼 앞서 가고,/나중 간 사람은 나중 간 만큼 뒤서 가고,/두런두런 나서서/저마다의 생애로 저물어가는/눈 덮인 길들은 아름답다.//(‘만경강4’ 전문)” 김만수 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작품 만경강4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언급한 도(道)의 세계가 떠오른다. 도가 사라지면 덕(德)이 나타나고, 덕이 사라지면 인(仁)이 나타나고, 인이 사라지면 의(義)가 나타나고, 의가 사라지면 예(禮)가 나타나는 것이다”고 말이다.

즉, 예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모범적이긴 하나 뭔가 옹색한 범인이며, 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예를 중시하는 이보다는 윗길이지만 인을 지키며 사는 사람보다는 아래라는 것.

그리고 더 큰 성인은 그보다 더 큰 덕과 도의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물음과 깊은 사유가 공존하는 시 속에는 앞선 자와 뒤처진 자가 함께 가는 동행의 길, 저마다의 삶대로 흘러가는 길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야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은 국문학자로서의 삶의 비중이 더욱 컸다.

그가 펴낸 수십권의 판소리 관련 학술저서는 앞으로도 거의 성취하기 힘든 깊이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정도로 공이 크다.

이렇듯 시인의 작품 속에는 판소리의 한과 슬픈 정서들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는 세월을 기다려 숙성해온 발효의 미학이 깔려 슬픔과 고통을 넘어선 그 무엇, 삭힘의 세월이 켜켜이 묻어난다.

그래서 마치 잘 익힌 판소리의 냄새와 가락과도 같은 삶이 조금씩 배어져 나온다.

또 생활 속에서 체득하게 된 갖가지 경험들은 시적 소재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낸다.

때문에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연작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속성을 지닌 시들은 더욱 울림이 커져 독자에게 상상력과 시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도록 한다.

주목할 점은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시 속에 실어 들어 올리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해묵어 오래된/서랍을 정리하다가/아내의 낡은 노트를 보았다//자질구레한 일상이 묻어있는 단어 사이로/문득 눈에 들어오는/”콩나물 100원“/그날 누가 왔던가?/누구를 위해 콩나물을 샀을까?/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도대체 알 길이 없는데,/누가 볼까봐 서둘러/노트를 도로 닫으며,/먼지 속에 훅 섞여 있을지도 모를/물기도 함께 닫으며//(‘낡은 노트’ 부분)” 100원어치 콩나물을 사고 그것을 기록하고 기억해 눈물 흘리는 삶과 연결한 시인은 우리의 인생이 첩첩이 쌓여 엄청난 높이의 심연에 도달하게 만드는 힘으로 독자들을 위로하고, 포용하고 있는 셈이다.

손택수 시인은 “최동현의 시는 잃어버린 감각과 사유를 자극하며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며 “새로움이 들끓는 시대에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한 시집이다”고 밝혔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최 시인은 1985년 ‘남민시’ 동인지 제1집 ‘들 건너 사람들’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판소리 연구에 매진했으며 전북작가회의와 전북민예총 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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