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덕 '화분 사이의 식사'··· 51편 시 수록
호소력 짙은 시어로 작가만의 세계관 펼쳐

예민한 감각과 특유의 전복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강봉덕 시인의 ‘화분 사이의 식사(실천문학사)’에는 몰감각의 시대에 맞서는 힘이 있다.

주옥 같은 51편의 시 속에는 일상의 습속과 일반적인 감각의 저변을 초극한 상상력으로 바꿔 독자들에게 낯선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시인은 현실의 언어를 낯설게 조합하지만 시편들은 난해하지 않다.

특히 물화된 세상의 구태의연한 외양을 타파하고 마치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듯 전인미답의 방식으로 시의 형상을 축조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호소력 짙은 시어들을 선보인다.

그로 인해 의미망의 깊이를 곱씹어 보게 하는 힘을 뿜어내며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관을 펼친다.

시집 제1부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시적 입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또 그가 어떻게 시의 행로를 따라가고 있는가를 선명하게 드러내 물질문명의 한복판에서 외형화와 작위적 조작과 물량 공세가 팽배한 현실을 정신주의의 힘으로 넘어서려는 몸짓도 엿 볼 수 있다.

“허공이 열려 창백하다/빠져드는 부드러운 것들은 반항하지 않는다//문이 열리면 문은 창을 만들고 창은 구멍을 낳고 낳으며 자라나는 블랙홀 손바닥 안에서 밥상머리에서 책상 위에서 버스 안에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구멍, 휘어지는 그림자도 어둠도 비명도 구멍의 반대편 깊을수록 환하다 뒷면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을 잡고 눈알을 발목을 가슴을 몸을 당긴다(‘블랙홀1’ 부분)” 시인이 구사하는 시편들이 어쩌면 허황한 시적 유희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구현하는 시적 세계는 균형감각과 주체적 사유의 자기 자리를 확보해 일반적인 삶의 원리로는 작동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해낸다.

그것은 곧 견고한 시적 수직성을 수반해 경이로운 말하기와 글쓰기의 결과물들을 가역적으로 변신시키며 타당성을 갖추는 것이다.

제1부와 제2부에 수록된 시편들은 시인의 창의적인 세계 인식과 그것을 시화(時化)하는 내면의 형상을 보여준다.

제3부의 시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다 강고해지는 반역의 행보를 마다하지 않는다.

시의 전방 지점에 초탈 또는 초절주의 길을 예견하는 시적 담론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언어의 발양에 머물지 않고 지금껏 일관한 시 세계로의 행로에서 스스로 찾아낸 하나의 탈출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즉, 시작의 길을 통해 궁벽한 상황을 초탈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 또 하나의 가치를 확인하는 셈이다.

“창을 연다는 것은 창으로 뛰어내리는 일입니다/문을 열면 안으로 문을 닫으면 밖으로 향하는 일입니다/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 죽음과 삶이 없는 곳입니다/당신은 오늘부터 출근 도장을 찍는 겁니다 (중략)//(‘WINDOWS10 부분’) 벽의 창이든 컴퓨터의 창이든 “창을 연다는 것”은 일상의 규율에 가장 근접해 있는 상식적 행위다.

그러나 이 시인의 겹친 꼴 눈길에 의지해서 보면 그것은 안과 밖, 삶과 죽음, 존재와 운명을 분할하고 또 통합하는 상징적 담론을 견인한다.

강종희 문화평론가는 “강봉덕의 시는 일상과 초극, 현실적인 삶과 존재론의 우주를 잇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호소력을 지녔다”며 “그의 전복적 상상력과 초극에의 꿈이 더 활달하고 설득력 있는 경계를 열어 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1969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한 시인은 2006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와 201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또 계간 ‘동리목월’ 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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