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범 시인 '보통의 식탁'··· 짧은 소설 형식
40개 이야기에 통해 '희망'의 메시지 전해
“당신은 토마토소스를 만들며 문을 열고 들어올 애인을 상상한다. 군복을 입은 당신의 애인은 낯선 듯 낯익은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겠지. 그러면 당신은 삶아낸 면 위에 토마토소스를 끼얹고 잘게 찢은 바질을 뿌려 토마토 바질 파스타를 완성할 것이다. 토마토소스에 바질의 향이 더해지며 근사한 한 끼 식사는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토마토소스만으로도 아쉬움 없는 맛일 테지만 바질의 향이 더해지며 애인을 위한 파스타는 이윽고 완전한 매혹이 될 것이다. 당신은 문득 스스로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질의 매혹을 떠올린다.
그리고 당신과 애인의 관계가 바질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당신의 바질 토마토 스파게티’)”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만연한 슬픔으로 존재하는 고독한 개인들을 포착해내 날카롭고도 단호한 시어로 이야기했던 조동범 시인이 이번에는 식탁을 주제로 한 산문을 내놓았다.
‘보통의 식탁(알마)’에 담긴 마흔 개의 이야기는 산문의 형식을 취하나 짧은 소설이자 한 편의 시로 읽혀진다.
책 속에는 수많은 당신들이 등장한다.
비록 수많은 ‘당신’으로 호명되지만, 그들은 타자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숱한 ‘나’를 발견한다.
당신들은 곧 나의 무수한 삶이다.
그리고 식탁 위로 오가는 사연에는 숨길 수 없는 삶의 진실이 녹아 들어 있다.
진실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저 일상의 푸념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부유한다.
시인은 삶에 진실의 단서들을 포착해내며 오래도록 숨겨놓았던, 남몰래 앓던 오랜 슬픔을 조심스레 꺼내 보인다.
우리가 느끼는 고독과 아픔 등이 삶을 살아가는데 고달픈 요소로 작용하지만 시인은 명민한 언어는 단지 그 고달픈 슬픔에만 매달리지 않고 슬픔을 끌어안은 자만이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그로 인해 모든 이들이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것.
‘희망’이라 불리는 그 어떤 작고 사소하지만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저자는 책에서 “무수히 많은 슬픔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저녁마다 피어 오를 것이다”며 “식탁 앞에서 당신들은 사랑이나 슬픔 혹은 고단한 저녁에 깃든 쓸쓸함과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기도 한다.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이 설령 슬프고 서러운 기억일지라도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극만을 풀어놓는 법이 없다.
슬픔조차 추억이 되게 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식탁이 주는 힘과 감동이다”고 밝혔다.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기 위한 안내서와 같은 산문집 ‘보통의 식탁’을 통해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 내보는 건 어떨까.
/박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