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운봉 1구간 14.3km 가장 인기
운봉 너른 들-수십 그루 노송 반겨
아홉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계곡
붉게 물든 단풍과 계곡에 빠져
낙엽위 '길없는 길' 걷는 여유도

지난 2013년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의 대표작 ‘길 없는 길’은 인간 부처라 칭해지는 고승 경허의 삶을 돌이켜보며 구도의 삶을 길에 빗대어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경허 스님의 화두, ‘길 없는 길’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가을이 깊어갈수록, 생각도 많아진다.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온 길과 살아가야할 길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 가을, ‘길 없는 길’이라는 모순적 말이 어울리는 곳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바로 지나간 길도 낙엽으로 사라지는 낭만 가득한 지리산 가을 길이 아닐까?

/편집자주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 주천-운봉 구간

지리산의 길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TV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며, 주말이면 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장난삼아 사람 반, 나무 반이라고 할 정도의 인기를 자랑했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길로 자리 잡아 이제는 베스트셀러를 넘어선 스테디셀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은 남원이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구간은 역시 1구간인 주천~운봉 구간이다.
주천~운봉 1구간은 14.3km로 운봉의 너른 들과 지리산 북사면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구룡치를 넘어 옛사람들이 남원장을 보러 다녔던 길로 옛길 흔적이 가장 많아 남아 있는 곳이다.
1구간의 명품은 행정마을 소나무 숲과 서어나무 숲이다.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수 십 그루 노송이 반긴다. 저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노송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행정마을 소나무숲 맞은편에는 마치 태고의 풍경을 간직한 듯한 서어나무 숲이 우리를 기다린다. 
서어나무 숲까지 가지 않더라도, 둘레길 1구간에는 가을만 허락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비경이 숨어 있다.
주천면 소재지인 외평마을에서 시작되는 1구간에서 마을을 지나 농로가 끝나면 남원장을 가던 사람들이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던 개미정지가 나온다.
그리고 개미정지 쉼터를 지나고 조금만 지나면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던 곳이라는 구룡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만추의 숨겨진 비경 구룡계곡

만추, 가을 중에서도 가장 깊은 가을인 지금 이 순간, 지리산을 찾으면 우리는 눈앞에서 지구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환상적인 가을을 마주할 수 있다.
 
구룡계곡은 아홉 용이 노닐다 승천했다는 전설이 사실처럼 느껴 질만큼 구불구불 아슬아슬하게 연결되며 절경을 연출한다.
가을 구룡 계곡의 백미는 붉게 물든 단풍이 너무나도 투명한 계곡물과 만나 연출하는 풍경이다.
마치 엄마 품에서 떠나 엉엉 울다 보니 온 몸이 빨개져 손끝까지 빨갛게 물든 아기의 손바닥을 보는듯한 지리산 가을단풍은 그 바로 아래서 햇빛을 올려다 볼 때 더욱 빨갛게 변하며 수줍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가까이서 봐도 아름답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단풍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진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천상의 선녀가 노니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착각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늦가을 찬바람도 구룡계곡의 멋진 경치를 구경하며 정신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방을 식혀주는 소중한 친구가 된다.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도 이제는 그 소리마저 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지리산의 풍경에 매혹될 무렵이 되면 이제 구룡계곡의 화룡점정인 구룡폭포의 웅장함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 장마철의 장대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오히려 조금은 차분한 느낌과 함께 붉은 빛깔 단풍과 어우러져 진중한 모습의 자태를 뽐내는 구룡폭포를 보고 있자면, 단아한 한 쌍의 남녀 모습을 그려보게도 된다.
 

고민과 사색의 길 없는 길, 지리산 길

모순이란 화두는 언제나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앞서간 사람의 발걸음을 눈이 쌓이듯 쌓인 낙엽이 지워버려 사람의 흔적마저 삼켜버린 만추의 지리산 길.
깊어질 대로 깊어져 이제는 그 끝이 보이는 가을의 끝자락 지리산의 ‘길 없는 길’을 걸어보며 인생을 음미해 보자!

/남원=장두선기자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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