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5월 11일로 선정됐다.
5월 11일은 1894년 전북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이다.
황토현전승일은 전봉준과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군을 격파해 혁명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14년 만이다.
혁명의 발상지와 역사성 등 동학농민혁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진전이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공인된 명칭을 얻기까지만 무려 110년이 걸렸다.
친일과 독재의 망령에 가려져온 세월 탓이라손 치더라도 만에 하나, 동학농민혁명 발상지가 호남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소홀히 다뤘을까 궁금하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동학농민혁명정신의 전국화를 주장해왔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시원(始原)이 동학농민혁명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자주의 가치를 추구한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이념의 효시라 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전개된 의병항쟁과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이어지는 역사의 출발점이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중 절반가량이 동학 계열 인사들이다.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주요 인사도 동학 계열이 상당수다.
백범 김구 선생이 동학 출신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반상(班常)의 구별과 남녀의 차별이 엄연했던 시절, 봉건적 신분제 철폐라는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조혼과 인신매매 금지, 과부의 재혼 자유 등 당시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여성인권의 근대적 시각을 제시하고 관철했다.
또한 역사상 최초의 주민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해 각 고을의 치안과 행정 업무 등을 주민이 직접 수행케 했다.
이 뿐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정신은 사회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린이날을 제정하며 어린이운동을 주창했던 소파 방정환도 동학 계열 인사다.
천도교로 개칭한 손병희의 사위이기도 하다.
생전에 살아 있는 동학으로 존경받던 무위당 장일순은 동학의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는 정신을 되살려 한살림운동을 제창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생협운동의 정신적 뿌리를 이루고 있다.
내년이면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원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는 지지부진하나 개헌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앞으로 개정될 헌법 전문에 동학농민혁명을 최우선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마땅하다.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앞으로 개정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동학농민혁명을 담아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조배숙 국회의원(민주평화당 익산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에 부쳐
- 중앙라운지
- 입력 2018.11.15 17:06
- 수정 2018.11.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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