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쓰레기 국이야?”

어릴 적 이 한마디 말실수에 나는 집밖으로 쫓겨나 엄동설한 찬바람을 뒤집어쓰며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매일 이다시피 먹는 국이 어린 입맛에 질리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 버려진 쓰레기로 만든 국인 줄 알았다.

바로 시래기국 이야기다.

김장을 다 마무리하고 남은 배춧잎이나 무 몸통에서 잘라낸 잎들을 모아 처마 밑 새끼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두고 노랗게 말라 배배 비틀어댈 때까지 말리는 게 시래기다.

어린 나의 눈에는 당연히 버려진 잎들을 모아 말린 것이니 쓰레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건 이상할 게 아니었다.

더욱이 내가 쓰레기로 오인한 것은 발음이 비슷한 ‘시래기’ 때문이었다.

“이게 얼마나 사람 몸에 좋은건데 쓰레기라고 해.

설마 에미가 자식에게 쓰레기를 먹으라고 주겠냐?”며 밥상 투정을 하는 나를 호되게 나무라시는 엄마의 내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식구들의 밥상에 시래기국을 정성스럽게 끓여 내놓았을 때 비로소 ‘시래기’가 사람 몸에 얼마나 좋은 ‘쓰레기’인 줄을 알았다.

시래기는 비타민의 보고寶庫다.

딸기보다도 많은 비타민C와 당근의 두 배에 달하는 비타민A, 그리고 비타민D의 에르고스테린 성분이 풍부하여 소화와 면역체계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며 겨울철 감기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다.

시래기에는 철분 함유량도 높아 빈혈 예방에도 탁월하고 식이섬유도 풍부해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각종 노폐물의 배출을 촉진하여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며 변비 예방, 대장암 예방에 좋다.

‘쓰레기’ 같은 볼품과 태생 치고는 거의 우리 건강에 만능 수준이다.

조금 더 시래기에 애정을 가지고 보자면, 당분이 빨리 흡수되지 않도록 억제해 고혈압 예방에 도움을 주고, 풍부한 칼슘으로 성장기 어린이 발달과 갱년기 여성의 골다공증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만하면 웬만한 보약 수준을 뛰어넘는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산행 도시락으로 가끔 시래기 주먹밥을 싸주곤 한다.

껍질을 벗겨 부드럽게 만든 시래기를 깨끗이 씻어 잘게 잘라준 뒤 불린 쌀을 넣고 집 간장, 들기름을 넣어 한번 살짝 볶아주면 훌륭한 시래기 주먹밥이 된다.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사이 한 조각 덥석 베어 물며 “맛있다”는 남편을 향해 “ 촌사람이라 이런걸 잘 먹는다”고 곰살맞게 흉을 본다.

하지만 그건 남편을 향한 흉이 아니라 내 어릴 적 엄마에게 투정했던 회한에 대한 보상 심리다.

‘장모님 시래기국보다 더 맛있다’며 헛칭찬을 남기고 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눈을 흘기지만 내 손에는 어느새 고소한 들깨가루가 듬뿍 들려있다.

시래기 주먹밥 하나를 만들 때 그 어느 요리보다 유난히 양념이 듬뿍 투하 되는 건 물론 남편을 위한 사랑의 맛이지만 내 어릴 적 엄동설한의 바깥바람보다 더 시려웠을 엄마의 아린 마음에 대한 회한이 투영된 것일 것이다.

어릴 적에는 그저 한겨울 따뜻한 국물이 되어 허기진 배를 불려주던 시래기로만 알았었는데 요즘은 웰빙 식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대접받는 음식이 되었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올 겨울 찬바람 쌩쌩 부는 날 꼭 따끈한 시래깃국을 끓여 먹으리라.

그러고 보니내가 방안에서 따끈한 시래깃국을 먹고 있을 때는 엄마는 산속에서 홀로 찬바람을 뒤집어 쓰고 누워 계시겠구나.

“비록 시래기 이파리 같은 너덜너덜한 삶을 사셨어도 당신은 우리에게 한없이 진국입니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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