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서학동은 삶의 흔적과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동네다. 전주문화재단에서 추진한 판소리 다섯마당 적벽가를 진행하면서 한옥마을과 연계해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한 트래킹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전주향교에서 오목교를 거쳐 포은 정몽주가 마셨다는 우물과 충경공 이정란 장군 사당을 지나 삼경사와 관상묘로 가는 1코스가 있다. 또 풍남문에서 시작해 남부시장과 싸전다리, 초록바위를 지나 공수내다리, 미륵댕이, 흑석굴과 바가지 시암, 송수남 화백 유택과 기념관 등의 2코스도 개발됐다. 

시민들과 함께 서학동 답방을 떠났다. 알다시피 서학동은 여러 이야기와 설화가 깃든 곳이다. 오목대 잔치에서 이성계가 대풍가를 부르자 종사관 포은 정몽주는 자리를 박차고 만경대로 향했고 이 와중에 물을 마시고 갔다는 우물이 아직까지도 양호하게 보존돼 있다. 충경공 이정란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 있으며 이 장군의 호를 따 충경로가 있고 전주를 지키는 부대를 충경부대라 부른다. 

삼경사를 지나 관성묘로 가는 길은 현재의 도로가 아닌 주민들이 사용하던 대나무 숲을 거닐어 본 소감은 신비로움이 극에 달한다, 

풍남문 단청에는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다. 참가자들에게 찾아보라 하니 선뜻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 연꽃봉우리, 용의 머리, 도깨비 얼굴, 각종 짐승상 등을 찾아내자 참가자들은 감탄을 연발한다. 

초록바위는 서학(천주교)남삼종의 아들과 호봉주의 아들이 잡혀 배교를 설득하였으나 서학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자 성년이 되도록 옥사에 가두었다 성년이 된 후에 참형을 하고 수장한 곳이다. 또 동학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이 처형된 장소였으며 현재는 동서학의 순교성지다. 전주천은 동학혁명군들을 처형하여 핏물이 며칠간 흘렸다는 설명에 숙연해 진 모습을 보였고, 불무골로 이동하면서 화살촉 등을 만들던 불무골이었으나 현재는 흔적이 없어 너무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물이 사납게 흘러 내렸다는 공수내다리가 주변 복개공사로 참가자들은 찾지 못하면서 설화가 있는 미륵댕이의 석불이 불교문화 전문가들의 감정은 신라말 고려초 석불이며 이두수의 설화는 흥미를 보였다,

흑석굴은 흑석골에 검은 돌이 많아서 흑석골이라 하였으며 일제 36년에 기간에 석탄을 채굴하였으나 생산 된 석탄의 질이 좋지 않아 채굴을 포기한 폐광을 동네 어린이들이 굴속에 들어가 놀기도 하였으나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 출입을 만들어 통제하여 현재는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으며 흑석굴 앞의 시암은 지역 주민들의 음용수로 사용 된 시암이 존재하고 있다

1970~80년대 학교에서 봄, 가을 소퐁 갈 때 소풍의 장소로 사랑 받던 두무소는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장군 휘하 두사충이 지리적 군사요충지이고 자연경관에 취하여 춤을 추자 타고 온 말도, 하늘도, 땅도, 나무도 춤을 추었던 곳이 개발에 밀려 자연경관은 훼손되어 위치만 남아 있으나 당시 미역감고 놀던 추억이 오늘도 생생하다

서학동 당산제는 수령 400년 된 당산나무에 매년 정월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내는데 여느 당산제와 다른 것은 어머니들이 좀도리 쌀을 모아 젊은이들을 위하고, 인근의 시암에 같이 제를 지내는 것이었다, 

흑석골에는 한지 단지가 조성되어 성업이 될 때에는 10여군데가 넘었고 80년대에 100만불 수출 탑을 수상한 업체도 있었고, 일본에서도 흑석골에서 생산 된 한지가 우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전주 속 서학동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 콘텐츠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국내외 모든 사람들이 새롭게 찾아와 사람의 냄새와 훈훈한 인정에 취하고 개발 될 서학동만의 음식 맛을 느끼는, 서학동만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을 기대하면서 트레킹 코스를 개발한 전주문화재단의 노고와 참가자들의 진지하고 전주에 대한 애향심에 감사를 드린다
 
/한중문화협회장 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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