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처녀, 총각.

모두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들 호칭 중에 다른 것들과 달리 독특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총각이다.

즉 김치 앞에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총각이다.

이름하여 총각김치다.

알타리김치라고도 많이 불리는 총각김치는 김장김치의 백미를 장식한다.

평소에는 ‘총각김치’라는 이름에 대해 무심했다가 김장을 하면서 어느 누군가 ‘하고많은 호칭 중에 왜 유독 총각김치만 있을까?’라고 중얼거리듯 질문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렇게 말이야’라는 반응과 함께 본격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총각은 '상투를 틀지 않고 머리를 땋아서 묶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일컫는 한자어다.

모을 총總 자와 뿔 각角 자다.

지금이야 머리 모양을 보고 총각인지 유부남인 지 구분을 할 수 없지만 옛날 총각들은 머리를 두 갈래로 길게 땋아 묶고 다녔다.

이 정도 한자어 풀이를 하면 총각김치의 작명 탄생 비밀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런 총각의 머리 맵시와 알타리무김치의 모습이 흡사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총각김치의 어원은 총각 머리의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게 정설이다.

총각김치는 뿌리가 어른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생겼고 무청이 연한 어린 무를 무청이 달린 채로 담근다.

둘둘 말린 무청을 잡고 고춧가루와 양념이 잘 버무려진 뿌리를 한 입 덥석 베어 물면 신선한 무 식감이 입안 가득 전해오며 식욕을 자극한다.

밥 한 그릇 비우는 데는 소위 게 눈 감추는 시간과 비슷하다.

지방에 따라 알타리무, 알무, 달랑무라고도 부르지만 총각무가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한 표준어다.

대부분 ‘정설’이 있으면 학문적이나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세간에 전해 내려오는 ‘속설’이 있게 마련이다.

총각김치에도 예외는 아니다.

즉, 총각김치의 작명 어원을 총각의 머리 모양에서 따왔다는 것이 정설이라면, 무가 마치 총각의 성기와 비슷하다 하여 총각김치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속설도 있다.

아마 옛날 동네 아낙들이 품앗이 삼아 김장을 담그면서 그 고단함을 달래고자 나누었던 은밀한 농이 아니었을까?총각김치는 파종 90일이 지나면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재배기간이 짧다.

다 자란 무는 이파리를 다듬거나 뿌리를 자르거나 하는 번거로움 없이 씻어서 바로 담글 수 있는 간편함이 있다.

1959년 발간된 ‘여원’이라는 잡지에서는 ‘서민적이고 애교 있는 김치로 한겨울에 손에 들고 어적어적 먹는 것’이라고 총각김치를 소개하고 있다.

이번 주말 우리 집 김장을 담글 예정이다.

친정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총각김치 맛있게 담그는 비법이 있다.

절여진 총각김치를 갖은 양념으로 잘 버무리고 난 뒤 바로 김치 통에 담지 않는다.

하룻밤 뚜껑을 덮어 그대로 놔둔다.

이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총각무에서 물이 나와 간이 살짝 달라진다.

이때 다시 간을 한 후 김치 통으로 직행하면 더 맛있는 총각김치를 맛볼 수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술에 약간 쓴 맛이 가시지 않은 뿌리 무를 한입 덥석 베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 침이 가득 돈다.

총각이면 어떻고 아가씨 면 어떠랴.

아저씨 면 어떻고 아줌마 면 어떠랴.

초겨울 입맛의 보석인 무김치 하나면 자연이 한가득 입 속으로 들어온다.

겨울의 밥상을 지켜 줄 든든한 파수꾼이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이겠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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