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자연 주제 67편 작품 수록
지나온 삶 반추 진솔한 깨달음 담아

박두규 시인이 30년 동안 천착해온 ‘세상의 길’에 대한 직관과 사유의 결과물을 담은 시집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모악 출판사)’가 발간됐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걸어가야 하는 길에서 박 시인은 삶의 지침이 되어 줄 ‘북극성 하나쯤은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내 시가 세상의 길’이 되는 걸 꿈꾸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시인은 북극성처럼 심연의 창공에서 반짝거리며 우리를 새로운 세상의 길로 이끄는 시편들을 탄생시켜낸다.

“툇마루에 앉아 강물을 바라본다. 의심도 없이 그대를 좇아온 세월은 아직도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그대의 환영을 노래하는 시들도 은어의 무리처럼 거침없이 따라 오른다. 이승의 시간이 다하기 전, 그대를 한번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이 생각만이 아직도 늙지 않았다. 나는 이미 강의 하류에 이르렀건만 지금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이 허튼 생각만이 남아 가여운 나를 위로한다(‘가여운 나를 위로하다’ 전문).”

시집에 수록된 67편의 작품은 시인이 ‘생명’과 ‘평화’ 그리고 ‘자연’이라는 주제를 통해 도달한 진솔한 깨달음이 담겨 있다.

모진 비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의 길 위에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고요하고 속됨이 없는 명징한 시 세계를 선사한다.

특히 시인의 눈에 비치는 바깥 풍경은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안쪽을 지니고 있다.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보이는 것을 지향하는 그 안쪽 세상은 시인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내면에서 일관하고 있는 정서는 ‘가여운’으로 시인의 시선이 바깥 풍경의 표면을 관통해 안쪽에 닿을 때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내면과 풍경의 안쪽이 만나는 순간 “매일매일 순간순간 가슴 떨리는 경이로움”이 발생하고, 그 경이로움을 통해 시인은 어쩌지 못하는 풍경의 안쪽에 자신을 투신한다.

그것을 시인은 “모든 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33년 동안 물밑을 헤엄쳐 왔다/언젠가부터 때가 되면 수면 위로 올라가/오래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고 싶었다/잘 마른 한지처럼 바싯거리는 소리를 내며/책장 넘기는 기분을 한껏 내고 싶었고/어붕의 함석지붕에 널려 있다가/어느 명절에 잘 쓰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어머니의 젖을 물고 바라보았을/첫날의 경이로운 하늘을 기억해내고 싶었다/글을 처음 익힐 때처럼 책을 읽고/시를 처음 쓸 때처럼 펜을 잡고 싶었다/얼마나 더 이승의 밥을 훔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한 세월이 또 온다(‘퇴직’전문).”

위의 시는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일에서 한 발 물러선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삶에서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삶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33년 동안 물 밑을 헤엄치다가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그 순간 만나게 되는 경이로운 하늘을 기억해내고 싶어 하는 설렘이 살아있음의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시인이 구사하는 방식은 자기 안에서 자기 바깥을 발견하고 자기 바깥에서 자기의 내부를 읽어낼 줄 아는, 시의 침묵으로 말하는 법에 맞닿아 있다.

그것이 그의 시가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이유인 것이다.

백무산 시인은 추천의 말에서 “단언컨대 박두규 시인은 물의 시인이다. 시인만큼 물의 성정을 닮은 시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며듦의 원리가 잘 체득된 시를 물 흐르듯이 풀어낼 줄 아는 시인이다. 말이 넘쳐날수록 소통이 더 어려워지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언어의 스며듦’에 대해 이처럼 우리를 일 깨운다”고 밝혔다.

1985년 ‘남민시’ 창립동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두규 시인은 ‘사과꽃 편지’, ‘당몰샘’, ‘숲에 들다’, ‘두텁나루숲, 그대’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 ‘지리산, 고라니에게 길을 묻다’ 를 펴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문화신문 ‘지리산 人’ 편집인을 맡고 있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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