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서구의 한 PC 방에 다녀왔던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지난 10월 14일 오전, 아르바이트 중이던 스물 한 살의 청년이 ‘불친절하다’며 딴지를 걸던 손님에게 수십차례 찔려 살해를 당한 바로 그 건물이었다.

청년의 죽음에 집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생각났다.

국회를 오가는 젊은 인턴비서들도 생각났다.

아이들과 조카들도 생각났다.

피해자는 내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젊은이 중 하나였을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없이 슬퍼진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오는 국민들의 목소리에서 공포와 분노가 읽힌다.

열심히 사는 평범한 한 개인이 이유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난도질당할 수 있다는 공포다.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데 대한 분노다.

심신미약 감형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은 119만 명을 웃돌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국민들은 중범죄자가 만취, 정신질환 등의 이유로 감형 받는 일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2008년 어린아이를 무참히 성폭행했던 조두순에게 당시 재판부는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2년 형을 구형했다.

여성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도 가해자는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무기징역에서 30년 징역으로 감형받았다.

이번 강서구 PC방 사건에 대한 청와대 청원명은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다.

피의자가 또다시 처벌의 그물을 빠져나가도록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국민들의 분노는 법을 통한 처벌이 국민 상식과 감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국민들이 우리 법을 정의롭지 않다고 여긴다면 국가는 국민들이 그 법을 따르리라는 기대 또한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심신미약에 관한 법률이 범죄자의 ‘도피처’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입법기관인 국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되어, 성폭력에 대해서는 술이나 약물을 이유로 한 심신미약자를 감형해주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처럼 법은 변한다.

형법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뀔 때가 되었다.

지난 25일, 국회는 강서구 PC방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국민들의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 심신미약 의무조항을 ‘감형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바꾸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 분노와 공포에 공감한 조치이다.

국민들의 법감정과 법 사이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행 형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최근 법무부가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심신미약이 아니라는 정신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향후 재판에서 죗값을 제대로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강서구 PC방에 조문을 하러 갔을 때, 시민들이 남기고 간 꽃과 음식, 편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피해자와 처지가 같은 아르바이트생이라 두 시간 반 넘는 거리를 찾아왔다는 청년, 강남역 이후 사회를 바꾸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주머니…….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곧 정의에 대한 바람이다.

정의를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그러나 그 바람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는 데 더없는 부채감을 느낀다.

추모 테이블에 남겨진 글들을 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책무를 생각한다.

더는 국민들이 피해자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사회병리와 흉악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세상, 법과 정의가 구현되는 나라를 만들어 마음의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다짐해 본다.

/이용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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