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따라 내가 남편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게 화근이었다.

그보다 평소 하지 않던 일을 저지른 남편의 탓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사실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저녁 만두를 빚기 위해 애써 다져놓은 만두 속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주방 한편 그릇에 담아 소쿠리로 잘 덮어두었던 것이다.

아뿔싸! 만두소가 가득 담아있어야 할 그릇과 소쿠리는 이미 깨끗이 씻어져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정갈하게도 놓여 있다.

우렁 각시는 밤새 밥을 지어놓고 갔다는데 밥은커녕 일만 저지르고 간 우렁 총각이 다녀갔음이 분명하다.

남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남편이 기특하게도(?) 집안일을 돕는다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만두소까지 내다 버린 것이다.

“만두소와 음식쓰레기도 구분 못하느냐?”라는 나의 핀잔에 “내 눈에는 음식물 쓰레기로 보였는데…”라며 꼬리를 내리는 남편을 보며 실소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사실 은근히 부아도 났다.

어떻게 만들어 놓은 만두 속인데.

칼질이 층간 소음이 될까 봐 조심조심 수 십 번 잔손질의 공이 물거품이 되었다.

데친 후 물기를 쪽 짜서 잘게 썬 숙주는 그렇다 치자.

밑간 재료에 재워 둔 다진 돼지고기는 그야말로 돈이다. 물기를 빼고 으깨어 잘게 썬 부추와 섞어 둔 두부도 만두소 제조의 중요한 공정이다. 잘 익은 작년 김장김치는 소를 조금 덜어 내고 수백 번 잘게 썰어 모든

재료와 같이 섞어 두었다.

여기에 계란까지 치대 넣었다.

만두는 속이 핵심이다.

만두피에 가려져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만두를 만두답게 하는 것은 이런 잔손질의 공과 정성이 가득한 만두 속이다.

사나흘 동안 아쉬움에 다시 오기가 생겼다.

삶의 수행인 셈 치고 다행히 남은 김장김치를 꺼내 들고 칼질을 시작했다.

아무리 음식의 무지렁이 우렁 총각이지만 이번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만두소는 구분할 수 있겠지 라는 안심도 위안이 되었다.

다시 만든 만두소는 처음 만든 부족분을 보완하여 더 오동통하게 만들어졌다.

만두소을 쓰레기로 오인한 죄(?)를 속죄라도 할 양으로 만두를 빚겠다고 나선 남편의 솜씨는 역시나 ‘옆구리 터진 만두’이기 일쑤다.

만두피의 옆구리에 살살 계란 흰자를 묻히며 내 얼굴만큼이나 곱게 빚어내는 숙련공의 기술에 어찌 미치랴.

곰 살스러운 남편 구박도 만두 빚기의 쏠쏠한 재미의 하나다.

만두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곁들여 아웅다웅 만들다 보니 어느새 200개가 만들어졌다.

그 중 못난이 만두부터 몇 개 골라 찜통에 쪘다.

김이 모락모락 먹음직스럽게 피어오르는 만두를 꺼냈다.

뜨거운 만두를 먹는 둘의 얼굴도 환한 김이 오르고 있었다.

만두는 한겨울 흰 눈이 펄펄 나릴 때 먹으면 더 통통하다.

올 겨우내 내내 두고두고 먹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포만감이 밀려온다.

만두피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만두 속은 만두 그 전부다.

좋은 재료로 속이 꽉 찬 만두 속이 만두 맛의 그 자체다.

사람도 그렇지 아니한가? 만두 속을 채우며 내 삶 속에서 나를 채우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세상은 커다란 학교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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