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관찰력-뚜렷한 주관 담은 수필집
70년 혜안-경험-사회이슈 등 59편 엮어

권투 용어 ‘어퍼컷’은 상대 선수의 턱을 밑에서 위로 올려 치는 공격법이다. 적중도는 떨어지지만 정확 하게 때리면 상대는 사정없이 고꾸라진다. 충격이 엄청나 결국 링 위에서 쓰러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기춘 수필집 ‘은발의 단상(수필과 비평사)’이 독자들에게 날리는 어퍼컷은 강렬하다 못해 강력하다. 즉, ‘수필집이 뭐 별거 있겠냐’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뜻이다. 

수필가는 주관적 정서를 노련하게 파고들어 막판에 강력한 한방을 날린다. 70년 세월을 살아낸 지혜와 남다른 혜안으로 빚어낸 이야기는 교훈 이상의 깨달음을 일러준다. 그래서 처음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매우 주관적이어서 거부감도 느껴지는 몇몇의 글들이 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작가만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어 독자를 무장해제 시킨다. 

노련미와 따뜻한 감성으로 완성시킨 ‘은발의 단상’ 안에는 작가가 진하게 우려낸 자신만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철학에 작가의 진심이 더해져 어려움에 닥친 이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앞으로의 삶이 막막한 청춘들에게는 격려를, 사회에서 조금씩 밀려나 불안감에 떠는 중년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아준다.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고 하더니, 요즘엔 영혼이 남루해졌다는 소리조차 자주 듣는다. 참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평생 마시던 우물이 더러워져 못 먹게 됐다는 말을 듣는 심정이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씁쓸하여 마음을 달래기 힘들다.(‘남루해진 공직자들의 혼’ 중에서).

최기춘 수필가는 서기관까지 지낸 철저한 행정공무원 출신이다. 행정공무원이 꿈이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초지일관 한결같은 삶을 영위했으며 끝내 소망을 성취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완성형 공무원. 그래서 그가 써내려 간 수필 하나가 더욱 큰 울림을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 달팽이를 바라노라면 집도 없이 맨몸으로 뿔같이 생긴 두 더듬이를 흔들며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모습인데,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지만 징그럽기도 했다. (중략) 우리 세대들은 대부분 단칸 삭월 셋방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청년실업 증가와 함께 학자금 대출에 대한 부담, 치솟는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인해 오포세대가 늘어난다니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오포세대란 연애와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라고 한다. 취업하기도 어렵고 치솟는 집값이 가장 큰 문제지만 학자금 대출 상환도 부담이 크다고 한다.(‘오포세대에게 희망을’)”.

사회적 이슈를 무심히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다 할 정답은 아니지만, 함께 생각해 봄직한 문제를 풀어내고 고민하고자 하는 어른의 면모도 확인 할 수 있다. 이렇듯 사소하지만 깊이 있는 관찰과 세심한 생각들로 엮어진 약59편의 이야기는 뻑뻑한 삶의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최기춘 수필가는 책머리에서 “글을 쓰다 보면 매사를 곰곰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아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도 된다”며 “용기를 내어 두 번째 수필집 ‘은발의 단상’을 펴냈다. 이 두 번째 수필집이 읽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임실 운암에서 출생한 최기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영호남수필, 전북수필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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