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시원스레 내리지는 않았으나, 찬바람이 쌩쌩 불어드는 한겨울이다.

집집마다 김장을 끝마친 후 한숨을 몰아쉬고, 거리에는 빨간 구세군 냄비의 종이 은은하게 울린다.

이렇게 조용히 2018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어쩐지 가족과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함께 연말을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다.

그것은 지나온 해의 결실을 함께 기뻐하고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허전함과 쓸쓸함이 배가되는 때이기도 하다.

가족이 없거나 멀리 떨어진 홀로어르신이나 소년소녀가장, 혹은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 등 매서운 겨울바람이 더욱 혹독하게 느껴질 이웃들이 많다.

 다행히 우리 전주는 천사의 도시로 불릴 만큼,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어 있다.

매년 익명으로 성금을 기부하는 ‘얼굴 없는 천사’와 지역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나서는 주민들.

최근에는 많은 봉사 단체에서 김장김치를 담가 이웃들에게 나누는 모습이 더없이 따뜻하다.

이러한 나눔은 물질의 가치나 정도를 떠나서, 그 자체로서 희망이 된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영화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故 이태석 신부가 봉사활동을 펼쳤던 남수단의 교과서에 수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故 이태석 신부는 의사라는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신부가 되어 남수단으로 건너간 후,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특히 그곳의 청소년들과 음악밴드를 만들어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서, 희망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비록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제자인 남수단 청년 토마스 타반이 이곳 한국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최근 국가고시를 통과했다고 하니 그의 사랑과 희망이 많은 이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나눔이나 봉사가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진 것을 아주 조금씩만 덜어내는 일이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지혜일지 모른다.

 어느 신화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과거 지구에는 메가케로스라는 크고 아름다운 뿔을 지닌 사슴이 있었는데, 그 어떤 짐승보다도 뛰어나고 위대했다고 한다.

사슴의 뿔은 날로 커지고 또 아름다워졌고 커지고 또 커져서 지탱할 수 없게까지 되었는데, 마침내는 그 뿔의 무게 때문에 멸절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눔이 없는 삶이란 그처럼 커지면 커질수록 무거워서 삶의 행복까지 잊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아마 영하 몇 도의 기온소식이 들릴 때마다, 찬 방에서 움츠릴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사건사고 뉴스를 볼 때마다 고통 받을 당사자와 가족들을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사랑일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작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일의 작은 희망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가족과 지인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웃의 아픔까지 보듬을 수 있는 나눔과 사랑의 연말이 되기를 바래본다.

/박병술 전주시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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