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풍처럼 퍼지는 유행은 나만의 공간을 갖는 일이다.

셀프 인테리어, 셀프 요리, 셀프 운동 등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처를 갖길 원하고 그 공간에서 소소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추세이다.

베란다 공간 또한 휴식과 사색을 하기에 손색없는 공간이다.

인조잔디를 깔고 티테이블을 설치하고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커피숍이 된다.

이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림으로써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작은 노력으로 큰 기쁨을 얻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체계도 생활 패턴을 바꾸는데 한 몫을 했다.

이처럼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을 침범하는 것은 원치 않으나 비대면으로 부러움을 표현한 댓글은 환영한다.

1인 시대의 풍속도에서 안식을 찾는 세대들에게 경량칸막이의 존재는 무엇일까? 경량칸막이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공간이 허물어지는 느낌과 더불어 애써 만든 노력이 한 순간 무너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케렌시아는 투우경기장에서 경렬한 싸움을 펼친 투우장의 소가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케렌시아 공간을 누군가 전투적으로 돌진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지친이가 쉴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자.

자신이 만든 공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간다면 해방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

그렇다, 경량칸막이의 이면은 평소에는 케렌시아의 공간이자 바쁜 일상의 시간이 한 순간 멈추는 공간이지만 화재가 발생하여 긴급한 상황에서는 해방구가 된다.

스스로 만들수도 스스로 무너뜨릴수도 있어야 한다.

일종의 젠가라는 보드게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블록을 쌓아올리고 무너지도 또 다시 쌓는 것처럼 무너진 것은 다시 쌓으면 된다.

무너지지 않는다면 쌓을 것도 없다.

경량칸막이를 뚫지 않으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없어 다시 만들 이유도 사라진다.

경량칸막이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케렌시아를 침범하는 수단이 아니다.

케렌시아를 지키기 위한 안전통로이다.

거실에 화염과 연기로 인해 탈출할 수 없다면 경량칸막이를 떠올려야 한다.

경량칸막이야말로 개인공간의 개념을 뛰어 넘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통로이다.

평소 벽면을 두드려 통통 소리가 나는 부분이 있다.

그 곳이 경량칸막이다.

셀프 인테리어로 안식처를 만들고 싶다면 경량칸막이 벽면 앞에 물건을 쌓지 않고 여백의 공간을 만들고 한 눈에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문을 그린다면 유사시 탈출구를 찾는 방법이 될 것이다.

케렌시아 공간도 결국은 생명과 조화를 이루어야 안정적인 휴식처가 되는 것이다.

최근 건축물은 대피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경량칸막이의 존재를 인정하자.

이건 단순한 벽이 아니다.

생명으로 통하는 또 하나의 문이다.

공동주택은 개인의 공간이자 공동의 공간이다.

개인적인 공간에 유연성을 갖고 타인의 생명도 받아들이는 공간이 진정한 케렌시아가 될 것이다.

/최용우 고창소방서 방호구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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