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남성 전화걸려와
"어려운 이웃에 힘돼 주길"
박스에 5,020만1950원 담겨
20차례 6억834만원 달해

27일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 간 A4용지 종이박스 안의 지페와 동전을 세고 있다. 이 박스에서는 총 5020만1950원으로 집계됐다./이원철기자

전주시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19년째 몰래 내놓고 간 성금이 6억원을 넘는다.

27일 오전 9시 7분.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40~50대 중년남성의 목소리로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였다.

통화 내용은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있고, 어려운 이웃에게 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딱 한 마디였다.

이 전화를 받은 손명희 노송동 행정민원팀 주무관은 “목소리로 보아 40~50대 남자로 보였다”면서 “다급하고 쫓기듯 짧은 말 한마디만 남기시고, 미쳐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고 밝혔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중년 남자와 통화내용에 따라 확인해보니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A4용지 박스가 놓여 있었고, 상자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 1개가 들어 있었다.

금액은 모두 5020만1950원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로 19년째 총 20차례에 걸쳐 몰래 보내 준 성금은 총 6억834만660원에 달한다.

또한, 천사가 남긴 편지로 보이는 A4용지에는 컴퓨터로 타이핑한 큰 글씨체로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내준 이 성금은 사랑의 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 4월 초등학생을 통해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중노2동 주민센터에 보낸 뒤 사라져 불리게 된 이름으로,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로 남몰래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해마다 이어지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전국에 익명의 기부자들이 늘어나게 하는 ‘얼굴없는 천사’들이 나타나게 했다.

이와 관련,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이러한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그의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숫자 천사(1004)를 연상케 하는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하고, 주변 6개동이 함께 천사축제를 개최하여 불우이웃을 돕는 등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0년 1월에는 얼굴 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노송동 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글귀가 새겨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를 세우기도 했다.

2015년 12월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오갔을 주민센터 주변에 기부천사 쉼터를 조성하였고, 옆 대로는 ‘천사의 길’,인근 주변은 ‘천사마을’로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해에는 천사의 길을 따라 천사벽화를 그렸고 올해에는 동 주민센터 입구에 천사기념관을 조성했다.

시는 그간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4900여 세대에 현금과 연탄, 쌀 등을 전달해왔으며, 노송동 저소득가정 초·중·고교 자녀 10명에게는 장학금도 수여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한 도시의 위대함이란 건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헌신, 사랑 등 고귀한 정신의 가치에 있다”면서 “‘얼굴 없는 천사’는 우리 전주를 위대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김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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