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흙에 해당 황금색 의미
해, 십이지 돼지 다복 상징
1천여 품종 전세계 분포
2천년 전부터 사육 추정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밝았다.

기해년은 단기 4352년, 서기 2019년이 되는 ‘돼지띠 해’다. 60년만에 찾아온 ‘황금 돼지의 해’로 불린다. 

또한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서른두 번째에 해당되며 십이지지(十二支地)로는 열두 번째에 해당된다. 

돼지는 부와 건강을 상징한다. 한꺼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습성 때문에 다산과 풍년의 상징인 동물로 재물과 다복을 대변하기도 한다.

특히 각종 문헌에는 기해에서 ‘기’는 황(黃)을 뜻하고 천간(天干)에서 ‘기’는 토(土) 즉, 흙에 해당하고 색깔로 따지면 노랑색 또는 황금색을 의미한다. 

‘해’는 십이지(十二支)의 열두번째, 돼지를 상징한다. 이에 따라 2019년 기해년은 ‘황금 돼지의 해’가 된다. 

황금색은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를 뜻해서 땅의 기운 위에서 살아가는 지구인에게 사랑받는 색깔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금색은 재물복을 상징하는데 이는 토가 황색을 의미하므로 곧 황금으로 확대해석이 가능해진다.

황금색을 상술로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줬던 경우가 지난 2007년에 발생하기도 했다.

국내 모든 언론과 방송에서 2007년을 ‘황금돼지해’로 오보한 사례다. 

우리 민족은 용꿈과 돼지꿈을 최고의 길몽으로 쳤는데 이는 용은 권위와 명예를 주고 돼지는 부와 건강을 주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육십갑자 달력에서 찾아보면 2007년은 정해(丁亥)년으로 ‘붉은 돼지’의 해인데 언론에서 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황금돼지해로 잘못 보도한 경우다.

또한 기해년 새해에 태어나는 아이는 황금 복돼지띠의 아이가 탄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타고난 재물복이 좋은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아이의 부모가 재력이 있다는 말로도 풀이 된다. 아이 낳고 집안의 재물이 늘어나게 된다고도 추론할 수 있다.

우리 문헌에 나오는 돼지에 대해 살펴보면 돼지는 멧돼지과에 속하는 잡식성 포유동물로서 현재 1천여 품종이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토종돼지는 털색이 검고 몸집이 작으며 주둥이가 길며 피하지방은 비교적 적지만 체질은 강건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토종돼지는 강원도 명파마을의 방목 토종돼지, 김천지방의 지례돼지, 경남 합천돼지, 제주도 똥돼지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돼지는 잡식성이기 때문에 송곳니와 어금니가 모두 발달해 있다. 

임신 기간은 114일 전후이며 대개 한 번에 8마리 안팎의 새끼를 낳는다. 

돼지는 피하에 땀샘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줌을 자주 눈다.

이 때문에 돼지우리는 항상 불결하고 습기가 차 있다. 돼지의 오줌통은 질기고 수축성이 좋아 옛날에는 오줌통에 바람을 넣어 공을 대신하기도 했다. 

십이지의 열두 번째 동물인 돼지는 시간으로는 해시(오후 9시∼11시), 방향으로는 북서북, 달로는 음력 10월에 해당하며 이 시각과 방향에서 오는 사기(邪氣, 주술적으로 나쁜 기운)를 막아주는 동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돼지를 옛날에는 ‘돝’이라고 했는데 요즘도 사투리로 도야지, 돝이(도치)라고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 사투리가 어원에 더 가까운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돼지는 예로부터 제천의식의 제물로 사용되어 제의(祭儀)의 희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신통력이 있는 영물, 길상의 동물로 길조를 나타내기도 한다.

석기시대 고분에서 멧돼지 뼈가 출토됐다는 것은 그 시대에 이미 멧돼지를 사육했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 등을 종합해 미루어보면 약 2천 년 전부터 돼지가 사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도 돼지는 한자로 豚(돈)이라 쓰는데 그것은 돈과 音(음)이 같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죽어서 돼지穴(혈)에 묘지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 

한편, 기해년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으로는 ‘기해예송(己亥禮訟)’이 있다.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5월, 효종의 국상에 계모후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설 분쟁이다. 

당시 서인들은 효종이 인조의 증자임을 앞세워 기년복을 주장했고 남인들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해 인조의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했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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