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라는 사자성어는 흔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곤 한다.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기욱편(淇澳篇)의 시 가운데 대나무를 보고 “잘라놓은 듯하고(切) 간 듯하며(磋) 쪼아놓은 듯하고(琢) 간 듯하다(磨)”라는 구절에서 해당 한자를 조합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신년이 되면 올해의 사자성어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전라북도 송하진 도지사는 1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9년 새해 도정 운영방향을 발표하며 “2019년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자세로 끊임없이 갈고 닦는 노력으로 정책성과를 거두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전북 홈페이지에서는 절차탁마에 대해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절차탁마에서 ‘절차와 과정’을 끼워넣어 의미부여를 하는 게 왠지 절차탁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북에서 절차탁마의 뜻을 모를 리 없고 필자 역시 ‘切磋’를 ‘절차(節次)와 과정(過程)’으로 나름대로 기교를 부린 전북의 센스를 필자는 충분히 알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행정에서 ‘절차와 과정’이란 말을 들으면 “형식에 사로잡혀 소극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공무원”을 떠올린다.

반면 ‘절차탁마’는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는 매우 “적극적인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절차탁마에서 ‘切’은 ‘끊다’는 의미도 있지만 ‘갈다’는 뜻도 있고, ‘磋’ 역시 ‘갈다’, ‘琢’은 ‘닦다’ ‘磨’는 ‘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두 공통적으로 ‘갈거나 닦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절, 차, 탁, 마란 네 한자 모두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에 해당한다.

이처럼 사자성어가 동사만으로 구성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각각의 한자를 볼 때 분명 절차탁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임 내지는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전북 행사에 참석했다가 군수 한 분과 만나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식사 자리에서 이 군수는 공무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면서 공무원들이 너무 소극적이라며 갑갑함을 토로했다.

공무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면 군정과 군민의 삶이 확 바뀔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이러한 갑갑함은 이 군수만의 생각일까?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이라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나 단체장이 아무리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바꾸려 해도 손발이 되는 공무원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과가 나타날 리 없다.

정권이 바뀌거나 단체장이 바뀔 때 개혁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과 조례로 정해진 절차와 과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절차와 과정은 행정의 민주화를 위한 보조적 수단이어야 하고, 행정의 능률화 및 적정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행정절차와 과정은 통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자칫 ‘절차와 과정’에 매몰되어 도민의 민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절차와 과정’을 과도하게 따지다 보면 일 처리는 지연되고, 될 것도 안 되기 때문이다.

흔히 민원을 거절하려면 원칙인 절차와 과정을 따진다는 말도 이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절차와 과정’에 매몰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야 하고 공무원들은 도민을 위해 절차탁마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공무원들을 단지 절차와 과정의 운용자로 봐서는 안 된다.

변화를 위한 도구 내지는 변화의 객체로 봐서도 안 된다.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로문 민주정책개발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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