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等(오등)은 茲(자)에 我(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此(차)로써 세계만방에 告(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此(차)로써 자손만대에 誥(고)하야 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 첫 문장이다.

우리가 바로 조선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날의 함성을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크고 작은 선언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마도 기미년에 선언한 대한독립선언서와 2.8독립선언서, 그리고 3.1 기미독립선언서를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먼저, 대한독립선언서(1919.2.1)는 한국 최초의 독립선언서로 기미독립선언과 구별하기 위해 무오독립선언이라고 한다.

중국 길림성에서 만주와 러시아 지역 39명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다.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라는 부분은 강압적인 한일병합의 무효와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도 불사한다는 투쟁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후에 2.8 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의 시발점이 된다.

두 번째, 2.8독립선언서(1919.2.8.
는 도쿄의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동해서 조선청년독립선언으로도 불린다.

 땅 일본의 중심 도쿄에서 유학생대회를 가장해 재일 유학생 600명가량이 참여했다.

‘일제의 국권침탈을 비난하고 독립을 위한 조선민족의 투쟁이 지속될 것’등 독립의 의지를 담고 있으며 3.1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마지막으로, 3.1 독립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기미독립선언서(1919.3.1.이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여기에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상경한 일반 민중들이 가세하며 수십만 인파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3.1 만세운동은 신분, 종교, 직업의 구별없이 모든 계층이 참여한 최초의 민중운동이다.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세계적으로 한국의 독립의지를 전파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45년 이런 한국의 뜻을 받아들여 대한민국은 독립국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예로부터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로 동학정신을 바탕으로 곳곳에서 일제에 맞서 만세운동을 벌인 역사적인 장소이다.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북도에서는 도내 만세운동 근원지를 조명하고 3.1운동 기념사업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3월 1일! 지금!! 1919년 3월 1일! 그날!! 100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뜻깊은 날이 되었으면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우리가 지킨 100년의 역사를 앞으로 우리가 이끌 새로운 100년의 시작으로 다시금 우리의 대화를 끌고 함께 나가보자.

/신현승 전북도 자치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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