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콜센터나 텔레마케터로부터 전화를 받곤 한다.

내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 전화하는 걸까 짜증이 나면서 전화 번호를 보자마자 끊기도 한다.

한편 그 분들은 하루종일 전화로 아쉬운 소리 하면서 마케팅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하는 동조의 마음이 들어 건성건성 듣다가 ‘지금 운전중입니다.’ 내지는 ‘회의중이네요.’라는 말로 전화를 끊기도 한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의 은행 창구에서는 아침부터 고객 응대를 위한 C/S 연습을 하고, 어떻게 하면 밝은 표정으로 고객을 대할까 안면근육도 풀어 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직장에 나올 때는 간, 쓸개 다 빼고 나와야 한다.’ 소리를 입사 할 때부터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 치우고 싶은 생각을 안 해 본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창구에선 큰 소리가 터진다. 사람이 이렇게 밀려 있는데 내 거는 언제 처리해 줄 것이냐! 지점장 나오라고 해! 너 이름이 뭐야? 등 반말은 다반사다.

점심 시간 3교대로 겨우 30분 밥숟갈 놓자마자 이 닦고 창구에 앉곤 하는데 직원들 다 어디 가고 빨리 처리해 주지 않는다는 아우성도 일상이 되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업무 처리의 요구와 금전적 손해 배상을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엔 이른바 진상 고객 달래느라 정작 조용히 자기 순서를 기다린 고객의 업무 처리가 늦어지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교통사고 나면 큰 소리부터 쳐야 이긴다고 하듯이 언제 어디서든 큰 소리부터 치고 봐야 내가 손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 보인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가 발전하여 소비자의 권리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소비자로서 갖춰야 할 예절도 이제는 생각했으면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감정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직장인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자기 본연의 일 하기도 힘든데 고객의 눈치 보며, 갖은 수모와 홀대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의 심정을 한 번 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이른바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응은 감독 기관에서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원이 생겼다 하면 실적에서 차감되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의 지배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 민원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민원인에게 있는지 피민원인에게 있는지의 시시비비는 가려서 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본다. 손님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피지배적인 응대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당한 절차에 의한 업무 처리를 존중할 줄 알고 노동자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한 고객이 이 사회의 진정한 고객이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영화관에 갔는데 ‘이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고객님의 형제, 자매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게시된 것을 보았다. 한국 사회의 감정노동자 천만인 시대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막말 욕지거리는 안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게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 순간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나도 그 누군가에겐 갑질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부터라도 텔레마케터의 쉼 없는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 주고 수고한단 말 한마디라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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