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건축문화상 아름다운건축물 대상 수상
2층 건물 생노병사-힐링 테마관 나뉘어
생명의 탄생-죽음까지 다양한 체험 구성
느린우체통-환생-지나온 삶 회고 뜻 깊어

“웰빙[Well-being]이냐,  웰다잉[Well-dying]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사람이건 ‘잘 사느냐, 잘 죽느냐’의 문제를 고민한다. 이는 곧 건강으로 귀결되는 문제이기도하다. 물론 종교인이 말하는 잘 살고 잘 죽는다는 것은 영적인 측면이 절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평범한 이들에게는 건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어떻게 해야 잘 죽느냐’ 라는 명제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이다.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어주고 앞으로 준비해야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있다.

바로 순창 건강장수 체험 과학관이 그곳이다. 100세 시대, 보다 건강한 몸으로 세상의 마감을 준비할 수 있는 곳, 순창 건강장수 체험 과학관으로 가보자.  

순창 체험 과학관을 가는 길은 깊은 골짜기라고 해도 맞을 듯 싶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다보면 언덕의 산길이 나온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었을 때 반가운 조형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름도 멋진 쉴랜드(Shilland)이다.

한글과 영어가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조형물에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잘 쉬는 것. 부지런히 일한 자, 이제 쉬어야 잘 사는 게 아닌 가 싶다. 


마지막 언덕에 오르면 풍광 좋은 곳,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16회 전라북도 건축 문화상 ‘아름다운 건축물  대상’을 수상한 건물 표지판이 눈에 띈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건강밥상’ 모니터와 ‘건강장수 체험과학관의 안내도’가 보이고 당뇨에 좋은 식단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체험과학관은 2층 건물로, 생, 로, 병, 사, 그리고 힐링관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우선 영상실로 향해 건강장수 체험 과학관을 알아보자. 


중종 때 122세까지 살았다는 순창의 조(趙)노인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장수의 비결을 알려고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왔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순창의 우물물, 정성스레 지은 음식, 그리고 효심이라는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잘 산다는 것의 첫 번째 암시가 곧 장수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생로병사는 생물체의 필연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소망은 본능이겠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생(生)관 - 인체의 신비

생(生)관에 들어서면 생명의 탄생과 인체의 구조와 장기의 기능이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생명은 우주의 조화이며 이 조화 속에서 인체는 신비하게 신체 구조를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생명체험과 건강 미로체험을 통해 우리의 상식을 점검하는 공간으로 스스로 본인 몸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 노(老)관 - 노자의 달관과 자연과의 일체성

노자는 처음부터 노인으로 태어나 200년을 수(壽)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와 함께 노자의 도덕경 68장이 게시되어 가슴에 와 닿는다.  
 

# 병(病)관 - 잘못된 태도와 무지, 그리고 건강한 식단

노자처럼 자연에 순응하고 살면 정말 200수를 누릴 수 있을까? 굳이 200살이 아니라도 무리하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꾸준히 운동하고 몸에 맞게 잘 먹으면 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병(炳)관에서는 나의 일상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곳으로 꼼꼼히 읽어보고 살펴가며 잘못된 식습관, 건강한 식단 등을 계획해보면 좋을 듯 싶다. 

병(炳)관의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이 눈을 크게 해준다. 
인생의 마지막, 죽음 앞이다. 뒤돌아보며 지나온 삶을 회고해 볼 수 있는 체험관이다.
체험관 앞에는 우체통이 있는데 필기도구와 편지지, 봉투까지 준비되어 있어 글을 쓸 수 있다.
 

# 사(死)관 - 임사체험, 저승사자, 요단강, 천국, 그리고 지옥

이곳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 있는데 바로 임사체험이다. 임사체험에서는 세상과 별리(別離)하는 순간, 이제 육신을 털고 영혼으로 가는 마지막 길을 경험하게 된다. 새털도 가라앉는다는 요단강물은 피안(彼岸)의 세계일까, 마귀의 소굴일까. 주마등처럼 생들이 빛처럼 지나가게 된다. 

너무나 많이 빚을 지고 살았고 갚아야 할 빚이 너무나 무거운 순간.
가장 큰 죄가 내가 나를 속인 죄요, 시간을 낭비한 죄이며, 오만에서 나온 타인에 대한 경멸을 마음과 행동으로 너무나 많이 저질렀던 죄 등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이대로 가면 지옥행 열차를 탈 수밖에 없나? 마음을 고쳐먹고 환생의 끈을 잡아당겨본다.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참회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듯 싶다. 


체험관을 다 돌았다면 한참을 쉬면서 생각해본다. 

앞으로의 생(生)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

이 질문에 적절한 답변은 바로, 잘 죽는다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곧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이 명제는 동전의 앞뒤처럼 이란성 쌍둥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으나 다른, 그러나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실체, 그리고 진실. 삶과 죽음은, 아니 잘 살고 잘 죽는다는 것은, 요샛말로 ‘웰빙[Well-being]이냐, 웰다잉[Well-dying]이냐’는  다른 음이지만 같은 의미를 지닌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라는 것이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체험관을 나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전북도 블로그기자단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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