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섞인무대-객석 몰입감↑
특권의식의 권력화 '풍자'
'종술'의 변화과정 아쉬워

새봄을 맞아 전주시립극단이 의욕적으로 선보인 ‘완장’의 무대는 신선했다.

아레나무대 비슷한 구조의 극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전주지역에서, 덕진예술회관의 무대와 객석을 뒤섞어 재배치한 발상의 전환은 비단 사실적 무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욕을 넘어, 안주를 용납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극단을 일신하겠다는 비장미까지 엿보였다.

무엇보다 원작의 입체적 공간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안배하며 적절히 활용되는 무대와 배우들의 동선은 중앙에 만들어진 저수지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윤흥길의 ‘완장’은 최고위 권력자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거나 오히려 더 열악하게 살아가는 군상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완장’은 평범한 우리들에게 집요하게 남아있는 의식의 한 자락, 어쩌면 모두에게 존재할지 모르는 특권의식과 그 의식이 권력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20세기적 ‘완장’이 시대를 떠나 동일한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을까 하는 기우도 있지만, 우러러보기에 알량한 권위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목숨 걸고 뒤쫓는 인물을 통해 보다 큰 ‘권력’과 그 주위 권력자들까지 사정권에 두면서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립극단의 ‘완장’은 가능한 원작이 가지고 있는 풍자와 해학을 충실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 목표를 가능하게 했던 동인은 연기자들의 열연이었다.

언제나 안정되고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는 단원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별히 혼신을 다하고 있음이 피부에 와 닿았다.

크고 작은 배역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열연을 보여주었지만 특히 ‘부월’ 역의 염정숙과 ‘최익삼’역의 안세형의 연기는 크게 들어왔다.

더 이상 농익을 수 없으리만치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 이 두 사람의 열연에 오히려 주인공 ‘종술’이 가려질 정도였다.

‘부월’의 순정이 ‘부월’과 ‘종술’의 러브스토리를 관객들에게 공감을 주게 되면서 두 사람의 휴머니티가 지나치게 작품의 중심에 서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으로써 원작에 비해 조금 더 정의롭게(?) 비춰지는 ‘종술’은 본의 아니게 작품의 주제를 약하게 만들지 않나 하는 우려를 주었다.

소시민 ‘종술’이 완장을 얻은 후 변화해가는 모습이 보다 섬세하게 그려지기를 기대했지만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까지는 조금 버거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새로운 상임연출을 맞아 그의 리더십이 십분 발휘될 가능성을 보았다는 점이다.

다른 예술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집단예술인 연극에 있어 크게 긍정적인 부분이다.

전국 어느 공립단체에도 뒤지지 않을 연기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시립극단이 날개를 달고 한 단계 더 높이 비상할 모양새다.

아들 탓보다는 ‘완장이 하는 짓이여!’라며 마치 완장귀신을 탓하는 듯 하는 운암댁, ‘진짜 완장은 눈에 뵈지 않는다’고 일갈하는 부월이, 그리고 작가의 목소리로 들렸던 교장선생의 훈계를 들으면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완장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전주시립극단의 제 114회 정기공연 ‘완장’은 우리가 잊고 있던,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상처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치유의 기나긴 여정까지도.

/김정수 전주대학교 공연방송연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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