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오는 듯, 그러나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최근 주말을 이용해 무형유산원의 책마루에서 인류학자 빅터 터너의 ‘제의에서 연극으로’를 읽으며 잠시 생각해보았다.

저자인 빅터 터너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민족극장의 배우인 어머니와 전자 기술자인 아버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모의 이혼 이후 잉글랜드 남쪽 마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

열두 살 때 ‘살라니스’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학교에서 상을 받았으나, 오히려 친구들의 놀림꺼리가 되면서 이를 격렬한 축구와 크러킷 선수로 활동으로 감수성의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했다.

그 후 그는 19세기 ‘자연과학’의 모델에 의지해서 ‘문화과학’을 촉진시키려는 사람들과 ‘우리’(서구인들)이 ‘타자’(비서구인들)과 인간성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렵게 균형을 잡고 있는 학문 분야인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류학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저서의 내용 중 “각 문화 및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각자는, 어떤 메시지들을 전달하기 위해서 지각 전체의 레퍼토리들을 두루 활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레벨에서는 손짓, 얼굴표현, 신체자세, 호흡의 완급, 경중, 눈물 등의 목록들을 사용하고, 문화적인 레벨에서는 양식화된 제스처, 무용 패턴, 규정된 침묵, 동시 발생적 움직임, 게임의 움직임과 ‘놀이들’ 스포츠, 제의 등의 목록들을 활용한다.

이렇게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다양한 ‘지각 코드들’과 그 코드들이 서로 결합되고 번역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 선각자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크로드 레비스트로스였다” 한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상호 신호를 보내며 그 신호체계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미술을 전공한 나는 미술이 나의 생각과 사고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라 생각했으며, 나름의 표현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터너가 “말하는 커뮤니타스의 세 가지 형식은 (1)‘자발적 커뮤니타스’는 개인적 상호작용의 격렬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어떤 심오하고, 직접적이고, 총제적인, 인간적 아이덴티티들의 만남이다. (2)‘이념적 커뮤니타스’라고 부른 것은 자발적 커뮤니타스의 상호작용들을 기술하기 위한 일련의 이론적인 개념이다. 여기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관찰 즉 ‘기억’은 이미 개인적인 주체를 공적 양자관계적 체험으로부터 멀리 덜어진 곳에다 두고 체험자는 이전의 직접성들을 중재하기 위해서 언어와 문화를 관찰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다. (3)‘규범적 커뮤니타스’란 또하나의 ‘지속적인 사회체계’, 여러 가지 관계들이나 자발적 커뮤니타스를 다소간에 지속적인 토대 위에서 증진시키고 유지시키려고 시도하는 일종의 하위문화 혹은 하위집단이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규범적 커뮤니타스는 스스로의 성질을 바꿔야만 한다.” <제의에서 연극으로 중>

책의 내용은 많은 부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나의 형식대로 정리해 보면 소통과 상호 교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현대에 어떤 도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며 “우리는 과연 어떤 소통과 교감을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영욱 한국전통문화전당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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