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부 5관왕 이후 금메달 줄이어
바이애슬론 효자종목 일등공신
제100회 동계체전 금메달 4관왕
전북 최초 최우수 선수상 쾌거
여름철 롤러타고 산악도로 훈련
무주읍 사격장 없어 안성까지 이동
전국대회 꼴등 후 체전준비 박차
실업팀 진학 예정 태극마크 목표

경기장에 본 모습과 딴판이다.

차가운 바람을 헤치며 이를 악물고 스키를 타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목에 걸며 전북 최초로 동계체전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최윤아(무주고 1년) 이야기다.

학교에서 만난 최윤아는 또래와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한 소녀다.

별 의미 없는 말에도 쉽게 웃을 정도다.

하지만 금메달 획득이 거저 얻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 개도 아니고 무려 네 개다.

환한 웃음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고생과 역정이 짧지 않은 인생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00회 전국동계체전 4관왕 주인공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 최윤아 선수 인터뷰

전국동계체전을 앞둔 작년 12월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제 실력이 나오지 않고 운동에 대한 의지까지 없어졌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주위의 우려도 나왔다.

마음의 상처의 깊어 방황하던 차, 아버지의 충고가 마음을 변하게 했다.

운동이 너무 힘든 어느 날 울면서 전화를 했다.

아버지에게 운동을 그만 두겠다고 했다.

딸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도 따다 줄 평소엔 인자하고 마음이 넓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

‘네가 운동을 왜 시작했는지를 돌이켜봐라’는 엄한 아버지의 말만 되돌아왔다.

다시 마음을 되잡았다.

운동을 통해 나의 인생을 개척하자는 마음을 다시 되새겼다.

굳은 마음으로 다시 눈길을 달렸다.

올해 동계체전에서 4관왕과 함께 전국동계체전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것은 단순한 운동성적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어린 소녀의 당찬 결과물인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체육교사 권유로 시작됐지만 운동을 하는 언니들과 오빠들의 모습을 보면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운동으로 내 꿈을 키워보자 결심했다.




성과물이 나오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동계체전에 첫 출전하면서 동메달을 목에 거는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부담 없이 대회에 임한 것이 오히려 좋은 성적의 기반이 됐다.

6학년에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동계체전 초등부에서 금메달 1개도 모자라 무려 5개를 목에 걸며 5관왕에 오른 것이다.

4학년 때 수확한 동메달에서 금메달로 메달 색깔만 바꿔보자며 대회에 임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금메달 5개를 딴 당시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바이애슬론 뿐 아니라 크로스컨트리에 출전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이런 영광이 다시 올까 싶을 정도였다.”

최윤아의 질주는 중학교에 진학해도 끊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2관왕을 기록한 데 이어 2학년 때 3관왕 그리고 지난해에도 3관왕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동계체전에 출전만 하면 다수의 금메달을 전북에 안기며 바이애슬론의 전북 동계종목의 효자로 등극하는데 공헌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최윤아의 질주는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중학교 시절 세웠던 2관왕과 3관왕이 부족했던지 고등부에서는 4관왕에 오른 것이다.

바이애슬론에서 금메달 3개, 크로스컨트리에서 금메달 1개를 전북에 안긴 것이다.

여기에 동계체전 최우수선수까지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번 최우수선수 수상은 동계체전 역사상 전북 선수가 최초로 받았다는 점에 더욱 의미가 크다.

자신을 7년 넘게 이끌었던 바이애슬론의 매력은 무얼까.

여자로서 다루기 힘든 총을 만진다는 데 첫 번째 이유다.

사격만 잘한다고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기본은 스키 주행실력이다.

여기에 사격이 더해져 좋은 성적이 나오게 된다.

두 가지 종목을 한 번에 하다보니 변수가 많다.

때문에 당일 컨디션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기도 한다.

선수로서 컨디션 조절은 필수적이다.

“총을 등에 매고 스키로 산을 질주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추운 날씨에 진행되는 경기이지만 전혀 춥지 않다. 여기에 사격은 또 다른 매력이다. 거친 숨을 잠시 참고 과녁을 명중하면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연습에 전념하고 싶어도 눈이 없는 여름에는 난처하기 십상이다.

수업이 끝난 후 방과후시간을 이용해 본격 훈련이 시작된다.

스키 대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산악도로를 달린다.

무주읍내에는 사격장이 없어 인근 안성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적극적인 후원자인 아버지의 응원 탓에 운동이 재미있기만 하다.

‘내 딸인 게 자랑스럽다. 다치지만 말아달라’는 아버지 격려 속에 동생 최유리(무주중 2년)도 함께 바이애슬론 선수로 활동 중이다.

마음과 달리 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 때다.

쉽게 피로하고 근육도 빨리 지치는 게 흠이다.

작년엔 자기항체방어면역력이 떨어져 응급실 신세도 졌다.

심지어 동계체전이 열리기 직전 전국대회에서 꼴등도 했다.

운동을 시작한 후 처음 겪은 꼴등이라 실망은커녕 오히려 신기했을 정도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꼴등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타고난 낙천적 성격 탓에 실망하지 않고 동계체전을 준비했다.

‘퀸의 귀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만족스런 성과를 거뒀다.

공부도 상위권을 유지한다.

고등학교 진학 후 난이도가 높아 특히 수학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지만 운동 뿐 아니라 공부도 놓치지 않을 각오다.

바이애슬론은 계속 하고 싶은 계획이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의무감에서다.

바이애슬론 하면 본인의 이름이 떠오르게 하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체력보강이 급선무다.

스키 타는 자세도 손봐야 하며 체중감량도 해야 한다.

시즌이 끝났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향후 실업팀에 진학할 예정이며,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다는 게 목표다.

대학에 진학해 관련 자격증 획득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실력이라면 국가대표는 무난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계획이 많다. 국가대표가 제일 큰 목표다. 바이애슬론 지도자 자격증도 이수할 예정이다. 실업팀에 합류해 항상 바이애슬론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학생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만 전북 바이애슬론 발전에 기여를 하는 선수가 될 계획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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