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창’, ‘한센병’ 등 정치권 막말이 도를 넘었다.

정치가 아무리 말로 하는 전쟁이라지만 거침이 없다.

욕설과 막말, 은어와 비속어 등 음지의 언어들이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모르고 했다 거니 다른 뜻이라 거니 사과와 변명도 울울(鬱鬱)하다.

문제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의 언사이기에 그 심각성은 막중하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신을 넘어 혐오스러울 지경이다.

망언과 극언, 폭언이 난무하는 우리 정치에 품격을 논할 수 있겠는가? 부끄럽고 부끄럽다.

아일랜드 작가 브렌단 베한(Brendan Behan)은 “자신의 부고만 빼곤 나쁜 홍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와 비슷한 여의도 격언(?)이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소식만 빼고 어떤 뉴스도 도움이 된다.” 좋은 뉴스든 나쁜 뉴스든 화제가 되고 알려지는 게 최고란 거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도 있다.

무관심 보다는 욕이라도 먹으며 관심을 받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최근 들어 극단적 언어로 상대편을 자극하고 공격하는 막말 퍼레이드가 정치권을 장식하고 있다.

5·18 망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한 의원은 “인지도 올랐다”며 기뻐했다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청와대 다이너마이트 폭파’ 극언도 있었다.

테러단체 수괴나 할 법한 언사가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 입에서 나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밥하는 아줌마’로 폄훼하거나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하는 폭언도 있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시절 격리되어 강제노역과 강제 불임 조치까지 당했다.

자신들에게 가해진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지금까지 가슴에 피멍을 안고 사는 한센인들의 고통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라면 조금이라도 헤아려 살펴야 했다.

타인의 고충이나 고통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 이들이 국민의 대표 노릇을 하고 있음이다.

서글픈 일이다.

정치권의 거친 언사는 이전에도 있어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은 정치권의 대표적 언어다.

요즘 세태에 비하면 애교스럽다.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을 줄여 “경포대”로 비아냥대는가 하면 ‘공업용 미싱’ 발언 같은 독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여의도 정치가 막가파식 언어도단이 판치는 시절은 일찍이 없었다.

언어의 유희를 넘어 막말이 막말을 낳는 언어폭력이 일상화 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상대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결의 정치, 막말 정치만 남았다.

품격이 사라진 정치를 바라보는 부끄러움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말이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이란 그 사람의 내면의 얼굴이자 인격의 울림 같은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거꾸로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라는 깊은 뜻도 여기에 있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은 열 번을 고쳐 생각하고 발언해도 모자람이 없다.

정치인들의 거듭된 막말 폭탄에 화도 나고 피로감을 느낄 국민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품격이 실종된 막말 정치를 극복하는데 힘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여의도(汝矣島)는 우리말로 ‘너섬’이다.

그 유래는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이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부르던 것이 한자화 되어 여의도가 되었다고 한다.

여야가 ‘너’가 되어 싸우는 섬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네티즌의 제안처럼 ‘너’ 여(汝)를 ‘힘쓸’ 여(勵)로 바꾸어 국민을 위해 힘쓰는 국회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

/국회의원 조배숙(민주평화당 익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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