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도가(道家)가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남겼다.

그 글의 제목은 성유심문(誠諭心文)인데 후세에 전해지기를 금언(金言)이 아닌 말이 없다는 서평을 내렸다.

다만 그 글을 남긴 도가의 생물 연대는 명확한 기록이 없으니 아쉬운 부면이다.

청검(淸儉)즉 맑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복을 불러오게 하는 계기(契機)가 될 수 있다.

몸을 낮추고 겸손히 하는 자세는 미덕(美德)이니 이러한 자세는 항상 남들로부터 존경과 호감을 받는다.

따라서 심정이 편안하고 정서의 통일이 이루어져서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이 언제나 너그럽고 유쾌한 데서 질환이 몸에 일어나지 않으며,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썼다.

사람은 욕심이 많은 데에서 번민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부귀와 영달을 누릴 수 있을까? 또는 주색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까? 등의 욕망이 생길수록 마음이 괴롭고 근심이 늘어난다.

따라서 근심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긴다 하였다.

사람은 옳지 않은 욕심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모든 재앙은 흔히 물건을 탐내는 데서 생긴다.

탐욕에 눈이 어둡게 되면 일을 그르치게 되거나 망신(亡身)하는 재앙을 불러오기 쉽다.

그렇게 되기 때문에 사람은 탐욕하는 마음을 억제하기에 힘써야 한다.

 모든 허물은 말과 행동이 경솔한 데서 생긴다.

마음이 어질지 못하면 행동도 따라서 못하게 된다.

행동이 어질지 못하면 남을 해치거나 불의(不義)를 자행(恣行)하여 죄악 내지 범죄를 범하게 된다.

사람은 언제나 심성(心性)을 어질게 가짐으로써 죄악이나 범죄를 저지르게 않게 되는 것이다.

눈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그릇된 점을 보지 않은 것은 교양 있는 사람의 태도라 하겠다.

입을 경계해서 남의 결점을 말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품격을 도야(陶冶)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는 것이다.

 탐욕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번민을 가져오게 되고, 성내면 신격을 자극시켜 몸에 해롭다.

따라서 심성을 경계해서 탐내거나 성내지 말라 했다.

악한 벗을 따르면 나도 거기에 물들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경계해서 악한 벗을 따르지 말라 했다.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거나 자기에 관계없는 일을 함부로 하려 든다면 자신의 교양을 떨어뜨릴 뿐 만 아니라 과오를 저지르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며, 자기와 관계되지 않은 일을 언행으로 나타내서도 안된다.

 총명한 사람은 한때 사물의 판단에 흐릴 수가 있고 아무리 완벽한 계획도 예상과는 어긋나는 수가 있다.

남을 손상하게 하면 남도 나를 손상시키려 들기 때문에 나 자신도 마침내 손상을 입게 되는 이치이다.

사람은 마땅히 남을 도울지언정 남에게 손실을 입혀서는 안된다.

 위에서는 푸른 하늘이 내려다보고 아래에서는 땅의 신령이 살펴보고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을까? 인간은 정도(正道)를 지키고 양심을 속이는 행위는 없도록 경계하고 근신하여야 한다.

근간의 국내 사회사상(社會事象)의 실상을 제시해 볼까한다.

선거를 거쳐서 당당하게 당선 된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각종 지방의회 의원 또는 국회의원 등은 막강한 의무와 권한을 수행하는 가운데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서 형사 처벌을 받는 인원수가 47.3%라는 모종의 집계가 나온 바 있었다.

마음 깨우치는 도가의 글에 비추어 보면 청검(淸儉) 즉 맑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 재앙(災殃)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복을 불러오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금언을 지키지 않아서 저지른 범죄가 되어 망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정직하고 천도(天道)의 순리에 순응한 마음의 깨우침으로 살아가는 자세는 어느 시대에나 영예롭고 지혜로운 삶이 될 것이다.

/강병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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