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시카 브룬씨의 가족 상봉

1972년 母 출산후 세상떠나
12살때 프랑스로 입양돼
韓조선업체서 문화 배워
전북경찰 도움 고모 만나

1978년 프랑스로 입양됐던 박난아(프랑스이름·Jessica Brun)씨가 22일 전북경찰청에서 박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고모 부부와 상봉을 하며 포옹을 하고 있다./이원철기자
1978년 프랑스로 입양됐던 박난아(프랑스이름·Jessica Brun)씨가 22일 전북경찰청에서 박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고모 부부와 상봉을 하며 포옹을 하고 있다./이원철기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 1978년 6살 때 프랑스로 입양됐던 여성이 전북 경찰의 도움으로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을 상봉했다.

주인공 제시카 브룬씨(47.한국이름 박난아)는 22일 전북경찰청에서 47년 만에 고모와 고모부를 만났다.

제시카 브룬씨는 지난 1972년 2월 18일 전주예수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출산 후 건강이 악화돼 핏덩이 딸을 남겨두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려웠던 시절 아내 없이 홀로 자녀 5명에 대한 양육을 감당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결국 막내 딸을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예수병원 사회복지과 직원은 브룬씨를 익산에 있는 영아원에 보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작별한 브룬씨는 이후 영아원에서 6년을 지낸 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이역만리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천만다행으로 온화하고 인자한 양부모 슬하에서 사랑과 정성으로 자라난 브룬씨는 12살 때 양부모를 따라 스페인 테네리페(Tenerife) 지역으로 이사했다.

성장하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커졌고 한국 조선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해양 공학을 전공, 국내 유명 조선업체에서 근무하며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알아갔다.

2005년부터는 해양엔지니어로 노르웨이에 있는 한국 조선소에서 검사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청천벽력 처럼 브룬씨는 2013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양부모 모두를 잃었다.

브룬씨는 “두 번이나 부모를 잃었다는 생각에 슬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생사를 알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친아버지가 살아 있을 것만 같아 꼭 찾고 싶었다”고 힘든 시절을 회상했다.

마음을 다잡은 브룬씨는 지난 2월 21일 전북경찰청을 찾아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신청서를 썼고 기자회견도 자청해 어디에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은 아버지에게 ‘그립다’는 내용의 편지를 띄웠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경찰은 병원의 협조를 받아 친부의 이름과 주소를 파악했고 이후 관할 주민센터를 수차례 방문해 제적등본을 열람하는 등 신청자의 민원을 해결에 전력을 다했다.

이같은 경찰의 노력에 결실을 맺듯 브룬씨는 22일 전북경찰청 현관에서 고모와 고모부를 만났다.

친부는 장성한 딸을 보지 못하고 이미 숨졌다는 소식도 함께 접하게 됐다.

47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을 만난 제시카 브룬씨는 이날 혈육의 손을 맞잡고 한동안 울먹였다.

고모부는 그런 조카의 손을 맞잡고 “반갑다.반가워 정말.(아버지랑) 똑 닮았네”라며 다독였다.

고모는 “울지마.오빠가 살아계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47년 만에 만난 조카를 꼭 끌어안았고 이를 가까이에서 지켜 본 전북경찰청 직원들은 손뼉을 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브룬씨는 하늘 나라에 있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도 되찾았다.

그의 부모는 갓 태어난 막내 딸에게 ‘박난아’ 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줬다.

브룬씨는 “아버지를 일찍부터 찾고 싶었지만, ‘포기하는게 어떠냐’는 말을 많이 들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전북경찰청 민원실 직원들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게 됐다. 이런 기적을 만들어준 경찰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에 대해 더 알고 싶고, 특히 언니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서 “아빠가 생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다“고 전했다.

브룬씨의 고모부도 “이렇게 조카를 잘 키워준 하늘이 참 고맙다. 오늘 수고해서 이 자리를 만들어 준 경찰과 정부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윤홍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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