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발코니 투신 사건

베체트병 투병 신병비관
40대 동생 목숨 건졌지만
전신마비, 형은 숨진채 발견
각자 다이어리에 유서 남겨

오랫동안 같은 희귀 난치병을 앓던 형제 중 50대 형은 숨지고 40대 동생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은 건졌지만 전신마비의 몸이 됐다.

함께 살던 70대 노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 비극이다.

이들 형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찰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6시 57분께 시각장애인 A씨(47)가 남원시 한 아파트 13층 발코니에서 뛰어내렸지만 소방서가 깔아 놓은 에어 매트 위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주민이 난간에 매달린 A씨를 보고 119에 신고한 덕분이다.

하지만 A씨는 목뼈 2개가 부러져 전신이 마비됐다.

투신 전 A씨는 가족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남긴 것으로 조사됐다.

거실에서는 뼈가 물러지는 희소질환으로 투병 중이던 형 B씨(51)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형제는 “이런 선택이 최선인 것 같다. 가족을 사랑한다. 용서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거실에 누워있던 형 주변에서는 수면제와 각종 빈 약봉지 등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형제는 수십년간 베체트병을 앓았다.

동생은 3기, 형은 말기였다.

베체트병은 구강 등에 궤양이 생겨 피부, 혈관, 위장관, 중추신경계, 심장, 폐 등 여러 장기를 침범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다섯 형제 중 숨진 B씨가 큰형이고, 투신한 A씨가 셋째다.

사건은 함께 살던 노부모가 타지로 간 사이에 벌어졌다.

A씨는 사건 직전 가족에게 “너무 아파하는 형을 안락사 시키고 나도 죽겠다”고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 형제가 신병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형이 부탁해 동생이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 다이어리에 “어머니, 아버지 죄송해요” “이만 생을 마감합니다.

이게 최선입니다” “제수씨와 잘 살아라” 등 부모와 남은 형제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경찰은 “글씨체가 서로 달라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유서를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씨 형제는 부모와 함께 인천에서 거주하다 지난 2월 어머니 고향인 남원으로 이사했고 둘 다 직업이 없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아니었다.

A씨 형제는 베체트병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져 모두 1급 시각장애인이다.

경찰은 “형은 집 안에서 화장실을 더듬어서 갈 정도이고, 동생 시력은 3~4m 앞을 뿌옇게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둘 다 미혼이고, 직장 생활을 한 기록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형제가 난치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형의 부탁에 따른 살인 등을 배제하지 않고 A씨가 회복하는 대로 사건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른 형제들은 “큰형은 지난해 한 차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고, 셋째 형은 큰형 모습이 자기 미래 모습이라고 여겨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형 시신에서 둔기나 흉기에 의한 훼손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둘은 수년 전부터 이 아파트에서 함께 지냈고, A씨가 형 간병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형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목격자와 가족 등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윤홍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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