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건축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벽돌을 쌓아 집을 짓고, 도로를 깔고, 지붕을 만들고, 창문을 만드는 일들을 상상한다.

과연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들이 건축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로 잠시만 살펴본다면 앞서 말한 건축 행위들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연극을 할 때 우리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무대 디자이너는 그 스토리에 맞추어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과 재료로 최적의 무대 세트를 디자인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시나리오를 먼저 쓰는 것과도 같다.

연극 시나리오 없이 무대 세트가 디자인될 수 없듯이, 건축가는 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는 건축물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성전조차도 결국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장소이지, 하나님이 집이 없는 분이라서 지은 것은 아니다.

절이나 다른 종교 건축물들 역시 인간의 행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건물이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는 환경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 건축이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극의 스토리는 빈약한데 무대 장치만 블록버스터급으로 해 놓으면 안 되듯, 너무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너무 과해도 안 되는 것이 건축물이다.

좋은 건축물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소주는 공장에서 화학 공식에 따라서 대량 생산되는 술이다.

소주는 생산하는 사람이나 지역의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인간과 격리된 가치를 가지는 술이다.

건축물에 비유한다면 찍어 내듯이 양산되는 아파트나 지역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국제주의 양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와인는 좋은 건축물 같다.

같은 종자의 포도라도 생산되는 땅의 토양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생산되고, 같은 종자의 포도와 같은 밭이라고 하더라도 그 해의 기후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만들어지며, 똑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포도를 담그는 사람에 의해서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와인 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서 세상에 단 한 종류밖에 없는 와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건축도 이같이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땅 위에 특별하게 주어진 프로그램에 특정한 건축가가 개입되어서 단 하나의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성과 건축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TV 광고로  포장된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로는 좋은 건축이 만들어질 수 없다.

/김남중 건축사(라인종합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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