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역사문화가치 되살려
1734년 신축된 호남 최대읍성
일제강점기 폐성령 철거돼
성곽추정지 시굴 흔적 확인

풍남문 차없는거리 광장 활용
전주부성 예산-현실성 고려
북동편성곽 선추진 북문-동문
토지매입 등 분석후 방향 결정

토지매입 없인 사실상 불가능
복원사업 주민 삶 훼손 안돼
구도심 땅속 우수-하수관로
통신설비 등 얽혀져 예산초과
정확한 위치 확인 어려워
100년의 근대문화유산도 소중

전주시 구도심 일대가 상업도심에서 역사도심으로 거듭난다.

이를 위해 전주한옥마을 주변의 중앙동·풍남동·노송동 일원의 옛 전주부성 터와 주변 도심부 약 151만6,000㎡가 역사도심지구로 설정되고 난개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시행중이다.

우선, 시는 현재 보물로 지정된 풍남문 정비와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성벽 및 성문 복원을 골자로 한 ‘전주 풍남문, 전주부성 학술조사 및 종합정비계획’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토지 및 건물 재산권 제한 등 사유재산 침해 문제도 제기된다.
/편집자 주    

 

▲전주부성 복원 왜?

전주시는 역사문화 되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와 전주부성 복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감영 복원 1단계 공사는 올 연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며, 보물 제308호인 풍남문과 구도심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는 조선시대 전주부성에 대한 체계적인 복원·보존·관리 방안 등을 담은 종합계획과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전주 풍남문, 전주부성 학술조사 및 종합정비계획 수립 학술용역’도 전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철거된 전라감영과 전주부성의 일부분을 체계적으로 복원하면 전주의 찬란했던 옛 모습을 회복하고, 구도심 일대의 역사문화적 가치도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주부성은 고려말 전라도관찰사인 최유경이 처음 쌓은 것으로 진해지며, 1734년(영조10)년 전라감사 조현명에 의해 대대적으로 신축됐다.

일제강점기 폐성령에 의해 철거되기 전까지 전라감영과 전주부명, 풍패지관, 경기전 등을 감쌌던 호남 최대의 읍성이었지만 전주부성의 남쪽 문인 풍남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시는 그간 추진해온 고문헌연구와 시굴조사, 학술조사 등을 통해 옛 전주부성 성곽 터를 추정하고, 그 일부분을 복원함으로써 호남 최대의 읍성이었던 전주부성의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시는 지난해 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과 함께 전주부성(全州府城) 동편부(풍남문~서문~북문 구간) 성곽 추정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추진, 한국전통문화전당 북동편 주차장 부지에서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조선시대 전주부성 성곽 기초부분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후, 시는 우석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전주 풍남문, 전주부성 학술조사 및 종합정비계획 수립 학술용역’을 추진해왔으며, 지난 10일 대상지 주민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전주부성 복원 의미와 향후 계획,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전주부성 종합정비계획 어떤 내용 담겼나?

용역 연구진에 따르면 풍남문 정비는 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한 내용을 골자로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도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광장 활용성에 중점을 뒀다.

이는 현재 풍남문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감싼 도로의 일부가 차 없는 거리로 조성돼 광장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주부성 성벽 복원의 경우, 기 시행된 매장문화재 발굴 및 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한국전통문화전당 인근 일부구간을 대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전주부성 옛 성곽터 대부분이 과거 일본인에 의해 철거된 후 성벽구간을 따라 도로가 개설돼 현행도로를 대체할 방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북동편 성곽 확인 구간을 먼저 추진하되, 역사고증과 관광자원화 가능성 등 타당성 검토를 거쳐 복원이 가능한 구간을 추가 도출하는 등 예산과 현실성 등을 고려해 장단시 성벽 복원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풍남문을 제외한 나머지 전주부성 성문 복원방향에 대해서는 우선 사진자료가 확보돼 대략적인 위치가 확인되고, 복원사업이 용이한 서문을 대상으로 우선 추진된다.

전주부성 서문(패서문)은 과거 사진자료를 토대로 옛 서문파출소 인근에 위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거리문화광장 인근으로 추정되는 북문과 동문거리에 위치했던 동문의 경우 토지매입 등 비용과 실효성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복원방향을 결정키로 했다.

 

▲주민 재산권 침해 우려

전주는 조선왕조의 본향으로 찬란한 역사문화를 지켜온 데다 전주한옥마을과 경기전 등에는 해마다 수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이에 역사문화콘텐츠 극대화 차원에서 전주부성과 성문, 성벽 등을 일부 복원하는 계획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할 과제도 많다.

전주부성 철거 이후 개설된 도로와 도로주변에 생겨난 건물 등이 도시공간을 빼곡히 채우면서 토지매입 등을 거치지 않고서는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고, 일부구간의 경우 당장 사업추진이 가능하더라도 주민 재산권 침해 우려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주부성의 성문과 성곽 등을 복원하기 위한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주민들을 설득해 협조를 이끌어내고, 복원사업이 주민들의 삶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도심 일대 땅속이 도로를 따라 개설된 수많은 우수·하수관로와 통신설비 등이 거미줄처럼 뒤얽혀져있어 사업 추진시 막대한 추가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또한 그간 추진된 몇 차례 시굴조사에서 과거 추진된 하수관로 및 통신설비 매설 등으로 인해 성곽시설이 교란됐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나타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성곽복원의 걸림돌이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면 훗날 성곽이 복원되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일각에서는 전주부성 복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주 구도심의 경우 지난 한 세기 골목골목마다 저마다의 색채와 개성을 가진 장소였던 만큼, 자칫 복원사업으로 인해 각각의 개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 100여 년 간 쌓아온 근대문화유산과 향후 전주의 보물이 될 미래유산들도 소중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주부성 성곽과 성문이 일부 복원된 이후에도 근대문화유산들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 근현대 건축물들과의 조화 여부도 향후 사업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권주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과 일문일답

"사유지 매입 필요 주민 마찰 불가피··· 피해 최소화를"

1.전주부성 복원사업 왜 필요하나? 추진하게 된 배경은?

-고려말 전라감사 최유경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전주부성(全州府城)은 전라감영과 전주부영, 풍패지관, 경기전, 조경묘 등 전주의 주요 관아시설을 감싸고 있는 읍성으로 조선시대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거점지이자 호남 최대의 읍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폐성령(廢城令)에 의해 1907년 전군도로 개설을 이유로 남문~서문~북문 구간의 성벽과 성문이 철거 되었고, 1910년에 북문~동문~남문 구간의 성벽과 성문이 철거되어 현재는 풍남문(보물 제308호)만 남아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전주부성 역사적 공간에 대한 진정성 회복과 단계별 문화재적 경관을 조성하기 위해 풍남문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전주부성 성벽과 성문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전주로 대변되는 구도심 공간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역사문화지구로 도시계획을 변경해 시간을 초월한 역사적 현장의 독자적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2.지금까지 발견된 전주부성 터의 흔적들과 전주부성의 대략적인 전체 영역, 사라진 성문들의 위치 추정지는?

-전주 관련 읍지 및 1737년(영조 10)에 전라감사 조현명이 전주부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하면서 그가 남겨 놓은 당시 공사 기록 등을 살펴보면 전주부성의 둘레는 대략 5,356척으로 현대 척도로 환산해 보면 대략 3.2km이며, 면적은 약 18만평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문의 위치는 전주부성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풍남문을 기준으로 일직선으로 북쪽편 현재의 오거리 광장에 단층 문루에 포루를 갖춘 북문이 위치하고 있다.

동문의 위치는 현재의 동문사거리이며, 서문의 위치는 동문에서 서쪽으로 반듯하게 가다보면 구)서문파출소가 있는데 그곳에 서문이 자리했던 곳이다.

동문과 서문은 단층 문루였으며, 포루를 갖추었고, 동문은 ‘완동문’, 서문은 ‘패서문’으로 불리웠다.



3.과거 전주부성과 성문이 있던 자리에 근대화 이후 도로가 개설되고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비록 일부 복원이라 할지라도 추진과정에서 건물소유주, 인근 주민들과 마찰이 예상되는데 해결방안은?

-일제강점기 지적도 및 발굴조사를 통해 전주부성의 성곽 라인이 확인되었고, 성문 복원을 위해서는 사유지에 대한 매입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지역주민들과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때문에 전주부성 복원에 대한 현실적인 복원안 도출을 위한 종합정비계획 용역을 추진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앞으로 추진하게 될 사업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전주부성 복원 범위 및 방향 등을 결정해 나갈 예정이다.



4.일각에서는 일본에 의해 사라진 전주부성이 우리가 복원하고 지켜야할 문화유산이 맞지만 지난 100년 가까이 도시에 쌓여온 근대문화유산도 소중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주부성 복원과 근대문화유산, 현대건축물 등이 조화를 이루게 할 방안은 있나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전주부성 공간 내에는 전주의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자원이 산재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층위와 이에 따른 역사적 건축물들이 남겨져 있다.

전주부성 복원 사업으로 구도심 일원 전체의 성곽과 성문을 완전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주부성 관련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고 있는 지역이나 개인 사유 재산권 침해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 등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복원으로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역사적 상징성을 부여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전주부성 복원 사업으로 인해 역사적 층위를 담고 있는 건축물과 공간은 무조건 철거하거나 그 역사성을 무시하고 새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의 경우는 그 의미를 살려 전주부성과 조화로운 건축물과 공간이 형성될 수 있도록 계획해 나갈 예정이다.



5.끝으로 한 말씀.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공간은 조선시대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산재한 곳이며, 전주 역사의 상징적 공간이므로 전주부성 복원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설정하고 보존·수리·복원·활용 및 관리·운영 등에 관한 분야별 정비의 대상 및 범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주부성 복원에 대한 지역주민 및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전주부성의 공간영역에 대한 원형성을 회복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보존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한다.



▲김윤철 의원, “역사도심 지구단위계획 과도한 규제 논란” 

전주 구도심이 지역구인 김윤철 의원(노송·풍남·인후3동)은 전주 역사도심 지구단위계획은 건물 높이와 층수, 건축행위 및 상가건물의 용도 제한이 너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김 의원은 “역사성, 가치성, 정체성 등 역사문화 보존지구의 필요성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는 매우 타당한 정책임을 적극 공감한다”면서 하지만 지역민들의 공감대 형성 및 이해와 설득이 부실한 정책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고 비난했다.

이는 역사도심지구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면서 향후 신축되는 해당지역의 건축층수가 기본 3층으로 제한되고 용도(업종) 또한 제한을 받게 된다는데서다.

특히 김윤철 의원은 이러한 업종 규제의 문제 등은 현 역사도심지구의 용도지역 중 상업지역이 무려 80.2%라는 구성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주민들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상가 시설의 불허 용도를 보면 커피숍, 제과점·제빵, 햄버거·도넛 등의 패스트푸드점, 꼬치구이점 및 이와 유사한 시설 등 일반적인 업종까지 제한하고 있고, 특히 동문거리권역, 감영객사권역은 일반음식점 영업에 있어서까지 일식, 중식, 양식, 기타 외국계 음식점까지 불허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도심지구 내에서까지 불허 기준이 차등적이라는 설명이다.

김윤철 의원은 “이러한 지나친 규제는 결국 역사도심지구 내 주민들은 건물 높이와 층수 제한 등으로 인해 오래된 건물에 대한 신축 등을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될 우려는 불 보듯 뻔하다”며 “실제로 갈수록 건물가는 오르지만 업종 규제 등으로 인한 상권 개발이 전혀 이뤄질 수 없는 경제 구조 그리고 침체 현상이 지속될 공산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김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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