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학교에서 민법강의를 할 때였다.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도 2학년 1학기 정도 수업이었던 것 같다.

한참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학생 두 명이 강의실 뒤로 나가 책을 들고 서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아직은 앳된 학생들이었다.

그 때만 해도 8년 째 강의를 하고 있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매우 낯설게만 느껴졌다.

강의 중이라 맥이 끊겨서는 안 될 같아 쉬는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은 훈련을 병행하다 보니 강의시간에 졸릴 때가 많은데 뒤로 나가 선 채로 강의를 들으면 졸음도 달아나고 좀 더 강의에 집중할 수 있다는 답을 들려줬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고된 훈련에 잠깐 졸아도 그리 뭐라 할 사람은 없었을 것인데 왜 그리도 열심이었던 걸까? 단순히 학점을 위한 것이라 보기에는 그들의 태도가 너무나 열정적이었다.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항상 남다른 열정이 있다.

학생들이나 갓 입사한 사원들도 그렇지만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초선 국회의원은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과는 다르게 뭔가를 바꾸고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17대 국회에 정책보좌관으로 국회에 첫 발을 디뎠을 때였다.

당시 모셨던 국회의원 역시 초선이었는데 그 때 그분의 열정은 정말 남달랐으며 그 열정만큼이나 의정활동에 열심이었다.

같이 날을 샌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의원들이 보좌진과 날을 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정만큼이나 성과도 뒤따랐다.

대표적으로 다른 어떤 의원보다 먼저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공익제보자보호법 추진에 발 벗고 나섰다.

시기상조라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당시에는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정보호법과 공익제보자보호법이 제정되어 국민의 권익보호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17대 국회 당시 이 초선의원은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으로 평판이 높았다.

임기 반이 지나기도 전에 주변에서 일은 그만하고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을 할 정도였다.

17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초선의원들이 많은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법안 발의 건수가 급증했다.

16대 국회에서는 1,651건이던 것이 17대 국회에서는 5,728건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초선의원들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0대 국회는 벌써 19,000건을 넘어섰다.

정치신인은 문제해결을 위해서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다.

권위의식에 찌든 관료사회를 깨려는 의지가 강하다.

사회적 부조리 타파나 약자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국민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의견을 청취하려고 한다.

모두 “열정”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열정을 가진 정치신인이 필요하다.

많은 국민들이 항상 정치가 변해야 된다고 말한다.

정치신인은 변화 지향적이다.

하지만 정치인 10년 이상이면 변화에 소극적이며 관료 수준의 권위에 빠지게 된다.

국회의원이 관료화 되다보면 국회는 관료제 정부를 닮아간다.

국회의 기능은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열정 있는 정치신인을 원한다.

다음 총선에서는 강의실 뒤에 선 채로 강의를 듣는 정도의 열정을 가진 정치신인이 많이 당선돼 정치권에도 깜짝 놀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로문 민주정책개발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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