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부터 사람 살기 시작
갈계리-청계리 등 고인돌 분포
청동기시대 고죽동-세전리 집터
백제시대 온조왕때 고룡군 기록
음악 성지 명인-명창 다수 배출
日 사쓰마도자기 남원도공 작품
도공의 노래 오늘이 오늘이소서
역사적 의의 재조명 노래탑 세워

어느 지역이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를 알면 그 지역의 장소가 더 특별하게 이해되는 순간이 있지요.

남원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하겠습니다.

남원향토박물관인데요. 남원은 예로부터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고장으로 많은 문화유산과 민속자료가 산재해있습니다. 

오랜 역사의 증거가 되는 고대시대의 출토유물, 광한루로 대표되는 수준 높았던 조선시대 양반문화, 정유재란 때 왜적에 대항했던 선열들의 정신과 흔적들이 있는데요.

또한 세계적 무형유산인 판소리의 고장으로 [춘향전], [흥부전] 등 고전 문학의 산실이자 주요 배경지이기도 합니다. 남원향토박물관은 이렇게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는 남원의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 전시, 연구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이곳에서는 남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구성은 역사의 마당, 문화의 마당, 민속의 마당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럼 남원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보러 가보실까요? 

남원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남원과 가까운 곡성군 입면의 제월리, 송전리와 옥과면 주산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남원지역에서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 기린산 자락에서 신석기 시대로 보이는 유물들이 발견된 사례가 있어 그 가능성은 더욱더 높다고 합니다. 남원 지역에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없다 하더라도 신석기 시대 후반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고죽동에서 발굴된 집터와 고인돌이 있습니다.


 

#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의 흔적

고인돌은 아영면 갈계리, 청계리, 고인리, 보절면 황벌리, 송동면 세전리, 수지면 산정리 등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 고인돌은 우선 덮개돌의 방향이 주변의 강이나 개천의 흐름과 일치하고 그 크기로 보아 큰 세력을 가진 집단에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죽동과 세전리 집터는 고죽동에서 3기가 발굴되었는데 남원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이라 의미가 깊답니다. 

집터는 고죽동에서 3기가 발굴되었고 송동면 세전리 낡은 터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로 약 30여 기가 확인되었습니다. 약 30㎡(10평) 규모입니다. 이 집터는 백제초기의 남원인 고룡군의 소재지를 비롯해 한·일간의 문화교류를 밝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91년 6월에 대산면 대곡리에서 발견된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원시 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주로 영남지역에서 발견되는 바위그림이 남원에서 발견된 것으로 동·서의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고 합니다. 

백제 시대 온조왕 때는 지방 군현의 하나로 ‘고룡군’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원과 인접한 가야 지역을 신라가 평정하게 되자 남원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가 되었고 서기 7세기의 시작과 함께 아막성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후기 신라 시대에 남원은 완산주와 무진주를 관장하는 호남 제1의 도시로 성장, 발전하며 전라도의 중심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역사의 마당 전시는 고려의 황산대첩, 조선 시대 정치 군사적 거점으로의 남원을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남원성 전투 등의 이야기도 알 수 있어 남원의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판소리 멋과 풍류를 아는 남원


예로부터 남원 사람들은 북을 치고 활을 쏘며 지리산에 오르는 풍류를 즐겼습니다.  

이를 남원의 3대 풍류라고 말합니다. 

남원의 멋과 풍류는 오래된 역사와 지리적 여건 그리고 신라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 음악을 전수한 사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군사적 요충지의 기능이 활을 쏘게 했고, 행정의 중심지로서 많은 학자와 문학적 요소가 생성되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남원은 문화 그대로를 풍류로, 풍류는 멋이 되었습니다.

천혜의 자연 지리산은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 주는 삶의 공간이 되어 주었지요.

남원의 3대 풍류를 모르면 남원사람이 아니라고 했을 만큼 훌륭한 문화적 유산과 전통 속에서 맛과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곳이 남원이었답니다. 

음악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남원의 명창, 명인에는 송홍록, 김정문, 박초월, 강도근 등 남원의 음악 창작과 전수 애쓰셨던 분들이 있습니다. 세시풍속의 근본 속에 형성된 풍류를 쉽게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 남원에서 건너간 일본 최고의 도자기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임진왜란의 끝 무렵인 정유재란 당시에 사스마의 번주 시마즈 요시 히로가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여 남원 출신의 박평의 등 남녀 도공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고국에서 익힌 도예 기술이 기반이 되어 민족의 빛깔이 살아 있는 백자를 재현했는데 그 결과물이 ‘사쓰마 도자기’입니다.

그들이 고향을 그리며 불렀다는 ‘오늘이 오늘이소서’라는 곡은 고려 말부터 조선 중엽까지 우리 조상들이 생활의 기쁨을 노래한 곡으로 남원에서 끌려간 도공과 그 후예들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기쁨의 노래가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가 되다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의의와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1995년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이 만인의 총 앞에 세워졌습니다.

직접 곡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제2실 문화의 마당으로 역사적 이야기를 배울 수 있어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 문화유산과 민속자료가 산재해 있는 남원

민속 마당에는 기본적인 예절과 민속에 대한 정보와 통과의례, 세시풍속, 민간신앙 등 남원의 옛 민속촌, 춘향전과 춘향제, 3D 용마놀이, 남원의 목기 등 특산물을 실물과 모형으로 구성해 놓았습니다.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한 종류의 집단에서부터 다 집단으로 옮겨가 지위가 바뀌거나 생의 중요한 사건이 되풀이될 때 인간이 치르는 일정한 집단적 의례를 통과의례라고 합니다. 통과의례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지만 사회구조나 문화의 차에 따라 강조하는 의례가 다르고 절차 또한 다릅니다.

민속의 마당에서는 자칫 무심코 지나치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통과의례, 세시풍속, 민간신앙에 대한 설명을 모형을 통해 전시 놓아서 차분히 들러보면서 삶의 기본이 되는 미풍양속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남원의 목기를 보면서 어릴 적 제기를 구매하러 일부러 남원에 방문했던 부모님과의 추억이 떠올라 흐뭇했습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남원의 특산품으로 전국 제일의 목기, 다과상, 밥상, 교자상 등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남원은 에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모든 산물이 집결하는 곳이었으며 지리산의 풍부한 임산자원과 이를 활용한 다양하고 질 좋은 토산품들이 생산되는 곳이었답니다. 

아담하고 조용한 남원의 역사에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있고 그 속에서 피어난 멋과 풍류가 있다는 사실을 향토박물관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그 지역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향토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관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남원향토박물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양림길 14-9(어현동37-156)
관람시간: 09:00~ 18:00(월요일 휴관)
문의: 063)620-5797, 5798

/전북도 블로그기자단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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