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광주전남-충청비해
전북 인구-경제규모 열세
인물키워 정치적만회해야
지역의원 10명으론 한계

7선 이철승, 양金에 패배
더 큰꿈 못이루고 좌절
고건, 대선 불출마 선언
대권도전 접어 아쉬워

중진 키우고 신인 발탁
투트랙 전략 접근 필요

국회의원 선수만 쌓고
지역구만 전념하는 인사
표로 매운맛 보여주고
대권 노리는 인사 선택

전북은 전국 17개 시도 중 영남이나 광주전남 그리고 충청 등 경쟁 지역에 비해 인구 수나 지역 면적, 경제규모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다.

이 때문에 대형 사업 추진이나 국가예산 확보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지리적 인구적 열세를 만회하는 방법은 바로 인물에 있다.

유능한 인물을 키우면 그 지역은 괄목상대, 신속한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

특히 유능한 정치인, 역량을 가진 정치인의 필요성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실제로 전북의 리더그룹인 국회를 보면 지역구 의원 수가 불과 10명이다.

이 수로는 국회 주요 상임위들을 커버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이 더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전북 지역구가 8명, 9명으로 축소된다면 전북 목소리는 국회에서 듣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도내 뜻있는 이들은 “전북의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선 힘 있는 인물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물 키우기는 단시일내 이뤄지지 않는다.

중장기적 계획과 전략을 통해 전북 인물을 한국의 인물로 키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전북 인물을 키우기 위해 전북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현 실상과 향후 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 전북 정치사, 거물들 막바지 고비 못 넘겨 아쉬움 /

소석 이철승(1922~2016)은 전북 정치사에서 가장 아까운 정치인으로 불릴 만 하다.

학생운동, 정치인, 시민사회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다.

제 3, 4, 5, 8, 9, 10, 12대 등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소석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야권의 핵심 인사였다.

김대중, 김영삼과 함께 야권의 삼두마차였다.

김영삼, 김대중 두 경쟁자가 결국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만일 소석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전북 출신 최초의 대통령도 가능했을 것이다.

소석은 1971년, 김영삼 김대중 등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고 신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다.

그러나 소석은 이 선거에서 결과적으로 김대중의 손을 들어주고 대선에서 물러났다.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소석은 김영삼에 맞섰지만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소석은 이후 중도통합론을 내세웠다.

또 월남 패망에 따른 국가 안보와 관련해 초당적 협력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석의 노선은 이른바 사쿠라 논쟁을 불러 일으키게 되고 점차 자신의 세력을 잃어갔다.

1979년 신민당 총재 경선에서 김영삼에게 다시 패하고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김대중의 황색바람에 밀려 전주에서 낙선했다.

이 때부터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

정계 활동에서 발을 뺀 뒤 소석은 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 총재,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 등 각종 우익운동과 반북반공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파란만장한 소석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1988년의 선거가 아쉬웠다.

전주에서 7선을 지냈지만 이 선거에서 3위로 밀려나면서 낙선했기 때문이다.

당시 황색바람이 거세게 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석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었다면 전북 정치사는 새롭게 쓰여졌을 것이다.

소석이 김영삼, 김대중 등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패하면서 더 큰 뜻을 이루지 못한 게 전북으로선 아쉬운 대목이다.

소석에 이어 전북 인물로 자주 회자되는 이는 고건이다.

실제로 고건 전 국무총리는 대권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로 꼽힌다.

그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행정의 달인이란 평을 받을 정도로 한국 행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1961년 현재의 행정고시에 합격해 전남지사, 대통령 정무제2수석비서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제30대, 35대 국무총리 등 2번의 국무총리로 내각 운영 경험을 쌓았다.

또 제22대 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사실상의 대권 수업도 받은 셈이었다.

여기에다 지난 2003년 두 번째로 국무총리를 수행하던 중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라 대통령 직무를 대행했다.

대통령 직무대행으로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고건의 인지도와 역량은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

화려한 경력과 함께 대통령직무대행 직도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2007년의 17대 대선을 앞두고 범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자리잡았다.

특히 전북에서의 압도적 지원은 기대 이상이었다.

전북은 고건의 대선 출마에 크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는 2007년 1월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는 그야말로 최대 사건이었다.

17대 대선 구도를 완전히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보수언론들이 1면 기사로 ‘고건 불출마로 대선구도 요동(조선일보)’으로 잡았고 진보언론의 한겨레도 “여권의 대선 구도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물론 전체 대선 판도에도 중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고 전 총리의 불출마 배경에 대해선 여러 설이 돌았지만 결과적으로 대권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전북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금만 더 버티고 대선까지 갔었다면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 전 총리의 불출마에 따라 여권은 정동영 후보가 나섰고 야당은 이명박 후보를 내세웠다.

결과는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고 진보정권 10년도 막을 내리게 됐다.



/ 중진 대거 키우고 참신 인물 발탁 등 투트랙 전략 /

이철승, 고건 중 전북 출신의 대통령이 나왔다면 전북의 현실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전북 발전을 위해선 당연히 대권을 잡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전북 출신이 대권을 잡기 위해선 전북 스스로 인물을 키워야 한다.

역량있고 유능한 인물을 최대한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진 인물을 집중 지원하면서도 참신한 인물을 발탁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중진의 중요성이다.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선 정치든 행정이든 달인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

그 수준에 올라가기까지는 정치인 스스로가 수많은 역경을 넘어서야 하고 특히 도전적 자세가 필요하다.

한 명의 3선, 4선 국회의원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최소 10여년 이상이 걸린다.

그 긴 세월을 통해 3선 이상의 중진이 됐다면 전북 차원에서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대선 도전 가능성이 없는 인물, 전북보다는 본인 위주의 활동을 하는 정치인은 차기 국회의원 총선에서 걸러내야 한다.

전북은 ‘가능성’ 있는 중진을 지원하는 것과 함께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들도 발탁해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새로운 피가 수혈돼야 역동성이 생기고 변화가 일어난다.

새 피 수혈이 없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조직이 부패할 수도 있다.

신진 인사들이 끊임없이 도전해야 전북이 산다.

전북이 인물을 키우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신진 인사를 발탁하고 단기적으론 차기 대선에 나설 수 있는 중진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특히 2022년 예정된 차기 대선은 매우 중요하다.

대선 가능성이 없이 단순히 국회의원 선수를 하나 더 쌓으려는 인사는 전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진 인사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지역구 국회의원을 목표로 하는 인물은 전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장기적 목표를 세운 뒤 “대권까지 도전해 전북 발전을 이끌어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진 이들이 내년 전북 총선거에서 대거 선출돼야 한다.

/서울=김일현기자 khe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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